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Feb 16. 2023

[D-319] 이 악무는 습관

47번째 글

바짝 긴장해 있을 때나 불안할 때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들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긴장을 풀거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도 모르게 특정한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게 되는 경우. 예를 들면 다리를 떤다던지, 눈을 깜빡인다던지, 손톱을 물어뜯는다던지, 입술을 뜯는다던지…. 누구나 이런 '안 좋은' 습관은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내 경우에는 이를 악무는 것이다.


나는 피곤하거나 긴장할 때면 이를 악무는 아주 안 좋은 습관이 있다. 무의식적으로 턱에 힘이 들어가서 이를 꽉 악물게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힘을 주고 있다가, 어느 순간 '아…!' 하고 내가 이를 악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다. 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나 오래 그러고 있었는지도 알 길이 없다. 치과 의사가 봤다면 아주 기겁을 할 만한 습관이다. 턱관절이나 치아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오래 그러고 있으면 턱이 욱신거리기도 하고 잇몸이 아프기도 한다. 게다가 나는 치아교정을 오랫동안 해서 이나 잇몸이 상대적으로 약해져 있기 때문에 이런 습관은 내게 더욱 안 좋다.


처음 내게 이 습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이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 조금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했었다. 바로 혀를 살짝 내밀어서 혀끝을 이 사이에 끼워 두는 것이다. 입술 밖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살짝. 그러면 내가 무의식적으로 이를 악물려고 할 때마다 혀를 깨물게 되기 때문에 이 습관을 미리 예방할 수가 있다. 약간은 무식해 보이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방법을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자꾸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혀를 물고 있으려고 해서다. 어쩌다 보니 습관이 고쳐진 것이 아니라 약간 이상하게 발전해 버렸다. 혀를 깨물지는 않지만 치아로 지그시 누르면서 적당히 힘을 주는 법을 터득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치아나 턱 근육에 영향을 주는 정도도 비슷해졌다. 예전에는 이를 악무느라 힘을 줬다면 지금은 혀를 누르느라 힘을 주게 되었다는 것만 바뀌었을 뿐. 또 혀를 물고 있는 것이 치아 모양에 변형을 줄까 봐 걱정되기도 해서 더는 이 방법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이를 악무는 습관을 고칠 다른 방법을 찾았다. 습관을 완전히 고칠 방법이라기보다는 조금 덜 할 방법이다. 나는 피곤해서 내가 이를 악물게 될 것 같으면 물을 마시거나 입을 벙긋거리며 입 스트레칭을 해 주거나 혀로 입 안을 가볍게 훑어 준다. 그렇게 해서 긴장한 턱 근육을 풀어 준다. 이렇게 하고 나면 적어도 얼마간은 이를 악물지 않고 있을 수 있다. 만약 이렇게 했는데도 여전히 어느 순간 이를 악물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면, 나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고 목을 천천히 돌려주면서 긴장을 푼다. 근육들이 서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인지, 목 근육을 좀 풀어 주면 턱과 얼굴 쪽도 좀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또 이렇게 목을 풀어 주면 몸 전체가 조금 릴렉스되는 효과도 있다. 그래서 덜 긴장하게 되고, 덜 신경 쓰게 된다.


습관을 한순간에 완전히 고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 정도의 의지와 실행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대신에 서서히 고쳐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이렇게 조금씩 긴장을 푸는 법을 배우면, 그래서 이를 악물지 않는 법을 배우면 언젠가 더는 그런 습관을 갖고 있지 않은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혹시 모른다. 언젠가는 내가 문제를 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몸과 마음의 여유를 찾아서 더는 바짝 긴장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렇게 되리라는 낙관적인 희망을 아직 놓지 않고 있다.



/

2023년 2월 16일,

버스 안에서 창문이 끽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Steve Johnson from Pixabay

작가의 이전글 [D-320] 일상을 놓지 않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