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Feb 17. 2023

[D-318] 나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는 여유

48번째 글

어젯밤에 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 꽤 피곤한 상태였지만 어쩐지 이대로 자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노래를 하나 듣고 자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뭘 들을지 고민하다가 퀸의 'It's a Hard Life'를 틀었다. 인생이 힘들어서 이 노래를 고른 건 아니고, 그냥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가 듣고 싶었다. 프레디의 보컬은 뜨거우면서 시원시원하고, 에너지가 끓어 넘치는 듯하고 벅차오르는데 또 다정한 느낌도 들어서 좋다. 그래서 프레디의 노래를 들으면 에너지가 내게도 전해져 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노래를 듣고 자서 그런지 오늘은 문득 프레디 머큐리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노래나 목소리, 그리고 그의 태도에 대해서. 프레디 머큐리와 생전에 가장 가까이 지냈던 매니저나 퀸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프레디 머큐리는 절대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오만하고 독단적인 '디바'가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프레디는 팀 내에서 의견을 조율해 주는 중재자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그의 카리스마 넘치고 당당한 모습은 페르소나였을 뿐, 실제로는 겸손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많은 인터뷰와 기사들에서 공통적으로 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여러 묘사들 중에서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얼마든지 그를 놀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존심이 강하거나 다른 사람의 평가에 신경을 쓰는 타입이 아니었어서 기꺼이 놀림거리가 되어 주었다는 것. 누구나 프레디를 농담의 소재로 쓸 수 있었다는 이 이야기는 내게 약간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나는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꽤 많이 신경 쓰는 편이다. 나는 누군가 내게 싫은 소리를 하는 것도 싫고,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것은 더욱 싫다. 그래서 나는 나를 향한 평가나 관심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한다. 가끔은 사소한 일로도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분명 상대방은 가벼운 농담으로 말한 것이거나 별다른 의도 없이 한 말인 것 같은데도, 나중에 혼자 곱씹으면서 고민에 빠지거나 불안해하거나 자책하게 되는 일도 생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고 감정적으로 요동치고 나를 괴롭히게 된다.


나 자신을 스스로 놀림감으로 내놓을 수 있으려면 아주 무던한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아니면, 예민하지만 정말 단단하고 강인한 사람이던지. 그래서 어떤 농담을 던져도 그것에 흔들리지 않는 잔잔한 물 같은 사람이어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 놀림을 받아도 상처를 받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런 잔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 선만 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농담을 웃어넘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 누군가 돌을 던져도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강한 여유, 던진 돌을 그냥 통과시켜 버릴 수 있는 가뿐한 여유, 그런 작은 돌멩이로는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단단한 여유 말이다.


이런 여유를 갖게 된다면 나도 나 자신을 기꺼이 농담의 대상으로 내놓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그런 성격을 타고났고, 자라면서 내 성격으로 굳어졌다. 이런 내 성질을 완전히 바꾸기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여유를 통해서 조금 더 깊고 넓은 마음을 만들 수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누군가 돌을 던지더라도, 그래서 물이 채워진 표면이 크게 요동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돌은 가라앉고 수면이 다시 고요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아예 마음을 우물이나 웅덩이처럼 물이 고이게 만들지 말고 길게 파서 시냇물처럼 계속 흘려보낼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돌이 바닥에 가라앉고 수면이 고요해지고 나면, 나도 모르는 새 자연스럽게 돌이 쓸려 내려가고 깨끗한 새 물이 마음에 채워지도록. 감정을 속에 묵혀 두지 않고 말이다. 이 방법이 가장 건강한 마인드 컨트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 자신을 웃음거리로 삼을 수 있는 여유. 넓고 깊고 끊임없이 흘러가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여유. 그런 여유를 갖고 싶다.



/

2023년 2월 17일,

소파에 앉아서 TV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Pierre-André from Pixabay

작가의 이전글 [D-319] 이 악무는 습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