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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Feb 15. 2023

[D-320] 일상을 놓지 않기

46번째 글

바쁠 때일수록 일상적인 일들을 소홀히 하게 된다. 식사를 거르거나, 운동을 거르거나, 잠을 포기하거나, 샤워나 양치, 청소 같은 일들을 안 하고 넘기게 되거나. 이런 일들이 바쁘고 피곤할 때는 종종 생긴다. 아무래도 나 자신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일상적인 일들보다는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이 급하고, 정신도 없고, 그냥 빨리 잠들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어제 나는 아침 운동을 거르고 일찍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일을 했고, 분명 많이 쌓여 있을 것이 뻔하지만 카톡도 확인하지 않았고, 아침 식사도 회사에 도착해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것으로 해결하고는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점심과 저녁은 팀원들과 함께 잘 먹었지만, 저녁을 먹은 이후에도 오피스에 남아서 정신없이 일을 했다. 그렇게 해서 어제 해야 하는 일을 마무리하고, 늦은 저녁에 오피스에서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그대로 집에 가서 침대에 엎어져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하면, 나는 그대로 집에 가서 침대에 엎어져 자지 않았다. 나는 회사 로비에 앉아서 그날의 챌린지 글을 썼다. 다행히 글이 평소보다 아주 빠르게 써졌다. 피곤해서 약간 멍한 상태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앉아서 글을 쓰다 보니 기분이 좋았다. 또 나는 집에 도착해서 30분 정도 짧게 운동을 했다. 그래서 아침 운동은 하지 못했지만 저녁에 조금이라도 운동을 하고 잘 수 있었다.


내가 '피곤해 죽겠는데도' 이런 일들을 했던 이유는, 내 일상을 되찾고 싶어서였다. 약간은 절박하기도 했다. 내가 일상적으로 하는 루틴들을 건너뛰게 되면 정말로 일에 매몰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들을 멈추게 되면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일상을 놓지 않으려고 매달렸다. 나를 위해서 말이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나 자신을 위해서, 나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이런 어제의 노력은 그럴 가치가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 아침에 확실히 깨달았다. 왜냐하면 오늘 아침 컨디션이 어제보다 훨씬 나아졌기 때문이다. 어제 스트레칭과 운동을 조금이라도 하고 잔 덕분에, 오늘 아침 내 뒷목은 뻐근하지 않다. 다리도 덜 부었다. 손목도 덜 아픈 것 같다. 또 어제 글을 쓴 덕분에, 나는 오늘 자책하거나 후회하지 않게 되었다. 어제 쓴 마흔다섯 번째 글에 이어서 오늘 마흔여섯 번째 글을 쓰면서 챌린지를 계속 이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바쁠수록 일상에 소홀해지게 된다. 하지만 오히려 바쁠 때일수록 일상을 놓지 말아야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일들은 나를 '나'로 유지시켜 주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당장 피로를 풀기 위해 씻지도 않고 잠을 자 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한다면 다음 날 아침 피부트러블이나 치통과 함께 깨어날지도 모르지 않나. 그래서 바쁠 때일수록 나 자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럴수록 나를 더 소중히 여기고 보듬어 주어야 한다. 또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는 것들을 놓아 버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나를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



/

2023년 2월 15일,

버스 안에서 팟캐스트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Mandy Fontan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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