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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Feb 14. 2023

[D-321] 사랑에도 체력이 필요하다

45번째 글

지금 나는 아주 피곤한 상태다.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고 갑자기 여러 업무들이 몰려들어 바쁘고 내가 스스로 벌려 놓은 일들도 좀 있어서 이리저리 치이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피곤할 때면 뭔가를 할 때 효율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악순환이 이어진다. 피곤하니까 효율이 낮고, 효율이 낮으니까 일이 밀리고, 일이 밀리니까 할 게 많아서 피곤하고, 피곤하니까 또 효율이 낮아지는 것이다.


이럴 땐 그냥 다 잊어버리고 잠이나 자는 게 상책이다. 자고 일어나면 훨씬 더 집중해서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문제는 내가 지금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할 일이 많으니까 신경이 쓰여서 침대에 누워도 도무지 잠이 오질 않는다. 그런데 일어나서 그 일을 할 만큼의 체력은 없다. 그러다 보니 점점 스트레스만 쌓여 간다. 이 일들이 끝나기 전까지는, 도무지 이 피로를 해소할 길이 없는 것만 같다.


집중력을 발휘하는 데에는 체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단순히 신체적인 활동을 하는 데에만 체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정신적 활동을 할 때도 체력이 요구된다고 말이다. 운동을 2시간 동안 하는 것만큼이나, 가만히 앉아서 2시간 동안 일이나 공부를 하는 것도 체력이 필요한 것이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수 있는 체력, 오랜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는 체력, 피로를 이겨낼 수 있는 체력이 있어야만 제대로 일에 몰두해서 잘 끝마칠 수가 있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에도 체력이 필요하다. 사랑은 그 무엇보다도 많은 힘을 들여야 하는 어려운 정신적 활동이기 때문이다. 내가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으면, 다시 말해 내가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으면, 누군가를 사랑하기 어렵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도 어려워지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도 어려워진다. 나는 피곤할 때면 내가 나 자신에게 더 가혹해진다는 것을 느낀다. 나 자신이 너무나도 못나 보이고, 한없이 작아지는 것만 같고, 스스로가 성에 차지 않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평소보다 더 강하게 드는 것 같다.


나는 나 자신과 화해하기로 결심했는데, 지금처럼 피곤한 눈꺼풀을 비비면서는 화해를 하기 어렵다. 화해는 결국 사랑으로 이루어지는데, 사랑과 같은 고차원적인 정신적 활동을 하기에는 체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쉽지 않은 험난한 여정이었던 화해의 길이 더욱 높고 가파른 산길처럼 보이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믿기도 쉽지가 않다. 믿음에도 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체력이 필요하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의 의미를 이젠 알 것도 같다.


오늘보다 덜 피곤하고 덜 가혹하고 더 사랑하는 내일을 맞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밤은 좀 푹 자고 일어날 작정이다. 내일을 더 강인하게 맞이하기 위해서 말이다.



/

2023년 2월 14일,

회사 로비에서 웅웅거리는 소음들을 들으며.



*커버: Image by Antonio López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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