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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Feb 13. 2023

[D-322] 서로 다른 것을 사랑하는 서로 다른 이유

44번째 글

나는 강아지를 좋아한다. 강아지는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강아지는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해 준다. 내가 집에 들어오면 자고 있다가도 달려와서 꼬리를 마구 흔들며 나를 반겨 준다. 강아지는 늘 내게 엉덩이를 꼭 붙이고 앉아서 쓰다듬어 달라고 조른다. 강아지는 걸을 때 발톱 소리가 경쾌하게 난다. 강아지에게서는 고소한 누룽지 냄새 같은 것이 난다. 강아지는 먹을 것을 보면 정신없이 달려드는데, 그 점이 귀엽다. 강아지는 얼굴에서 다양한 표정을 읽을 수가 있다. 그래서 좋다.


나는 고양이도 좋아한다. 고양이는 자기만의 생활이 있다. 고양이는 독립적이다. 고양이는 내가 불러도 오지 않을 때가 있고, 나와 교감하면서도 자신의 일상에 집중한다. 고양이는 가끔씩 내킬 때면 내 앞에서 발라당 눕거나 다리에 이마를 비벼 대곤 한다. 고양이는 걸을 때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사뿐사뿐 걷는다. 고양이는 씻지 않아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 고양이는 먹을 것을 봐도 자기 것이 아닌 걸 알면 덤벼들지 않는데, 그 점이 귀엽다. 고양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래서 좋다.


나는 이렇게 정 반대의 이유로 강아지와 고양이를 좋아한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이유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유가 전혀 다른데도 말이다. 강아지는 이래서 좋고 고양이는 저래서 좋은 거다. 누가 더 좋고 덜 좋은 게 아니다. 이렇게 우리가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는 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가끔은 완전히 정반대의 특징을 갖고 있는데도 똑같이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내가 강아지는 강아지다워서 좋아하고, 고양이는 고양이다워서 좋아하듯이.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나는 나의 좋은 점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나쁜 점들도 사랑할 수 있다. 아니, 애초에 이렇게 어떤 특징을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단어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만약 '이름을 부르면 내게 온다'는 점이 내가 강아지를 예뻐하는 이유라면, 나는 고양이는 좋아하지 않아야 옳다. 고양이는 이름을 불러도 내게 오지 않으니까. 그런데 나는 '이름을 불러도 내게 오지 않는 독립적인 성격' 때문에 고양이를 예뻐한다. 이 특징에도 불구하고 예뻐하는 게 아니라, 이 특징 때문에 예뻐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얘긴데, 나는 정말로 이 서로 반대되는 이유 때문에 강아지와 고양이를 모두 사랑한다.


그런데 나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나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나의 좋은 점이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니고, 나쁜 점이 늘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닌데. 그리고 내가 좋은 점이라고 생각하는 특징 때문에 누군가는 나를 미워하게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내가 나쁜 점이라고 생각하는 특징 때문에 누군가는 나를 매력적으로 보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의 이런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모두 '나'로 받아들이는 데에 애를 먹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내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면, 그러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에 충만하게 잠겨 들 수 있을까?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무한한 애정을 느끼게 될까? '나는 나를 사랑해'라는 문장을 진심으로 믿을 수 있게 될까?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면서, 잔잔한 물결처럼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마침내 평온을 찾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추측해 볼 뿐이다. 언제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전까지는 그냥, 나를 조금 덜 싫어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

2023년 2월 13일,

버스에 앉아서 바퀴 굴러가는 소리 들으며.



*커버: Image by Brianna Tucker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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