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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Feb 21. 2023

[D-314] 어른이 된다는 것과 어른스러워진다는 것

52번째 글

어떤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얻어진다. 예를 들면, 나이 같은 것. 나이를 먹는 것은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일이다. 반면 어떤 것들은 내가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피아노 연주 실력이나 예쁜 글씨체 같은 것. 이런 것들은 내가 꾸준히 노력하고 연습해서 따내야만 하는 것이다.


어릴 때는, 어른스러워지는 것은 전자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노력하지 않아도 매일같이 나이가 드는 것처럼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어른스러워지는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어릴 때는 어른이 된다는 것과 어른스럽다는 것이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자라면 당연히 어른스러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자라서 어른이 되어 보니, 이 두 가지는 같은 것도 아니었고,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가 같이 따라오는 것도 아니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저 특정 나이에 이른다는 것을 다르게 표현한 말일 뿐이다. 그저 내가 살아 있던 시간이 대략 20년이 되어 간다는 것. 그저 살아 있기만 하다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뱃지 같은 거였다. 일종의 참여상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어른스러워진다는 것은 이런 뱃지가 아니었다. 내가 노력해서 얻어내야 하는 것이었고, 연습이 필요한 일이었다. 뱃지 같은 게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성질에 가까웠다. 내가 그동안 살아온 삶들과 내가 그동안 떠올린 생각들, 나의 경험, 나의 마음가짐, 나의 태도, 나의 행동, 이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수집해서 모아 만들어내는 성질이나 특징이 바로 어른스러워진다는 일이었다.


또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점점 무뎌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살아온 세월이 쌓이다 보니 점점 인생에서 새로운 것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이 신기했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사소한 것 하나에 울고 웃고 괴로워하고 기뻐했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어른이 된 지금은 어떤 자극이 와도 대부분은 '그렇구나.' 하고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잠시 울거나 웃거나 괴로워하거나 기뻐하더라도 곧장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음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나의 감정보다는 "그래서 내일은 뭘 하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전보다 훨씬 덜 아파하고, 훨씬 더 감정적이게 되었다. 이런 태도는 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도 있고, 또 내가 노력해서 어른스러워진 부분도 있다.


그런데 내가 진짜로 전보다 '어른스러워졌다'고 느꼈을 때는 여기서 한 걸음을 더 나아갔을 때였다. 단순히 무뎌지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점점 무뎌질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을 때 말이다. 지금 내가 겪는 일들은 십 년 후의 내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지금 나를 온통 뒤흔들어 놓는 사건들은 십 년 후에 돌이켜보면 전혀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런 자극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바로 지금의 나를 소중히 여길 것이다. 일상 속에서 누리는 사소한 기쁨 하나하나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아주 작은 행복이라도 귀중하게 마음에 담아 둘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그 기쁨을 가장 크게 누릴 수 있는 시절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철이 덜 들었고 '어른스러워지려면' 멀었지만, 그래도 이 중요한 깨달음을 하나 얻어 냈다. 앞으로 후회할 일도 깨달을 일도 더 많을 것이다. 나는 점점 어른이 되어 갈 테고, 점점 무뎌질 테고, 어른스러워지는 연습을 할 테니까.



/

2023년 2월 21일,

퇴근 직후, 회사 로비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커버: Image by Jill Wellingto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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