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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Feb 22. 2023

[D-313] 새벽이라는 시간

53번째 글

나는 새벽에 뭘 하는 것을 좋아한다. 새벽이라는 시간은 특별하다. 아직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잠들어 있을 시간, 이제 막 날이 밝아 오려는 순간. 나는 아침잠이 없는 편이라 일찍 일어나서 새벽에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새벽에는 특유의 고요함이 있다. 가족들이 아직 잠들어 있어서 집 안도 조용하고, 창 밖에서도 소음이 별로 들리지 않는다. 새 소리나 바람 소리, 하루를 일찍 시작한 사람들이 드문드문 내는 소리뿐이다. 이런 소리는 새벽이 아니면 쉽게 귀 기울일 수 없는 소리다. 또 새벽에 일어나면 차분해진다. 몸이 무거운 것은 아니고 기분이 안 좋은 쪽으로 가라앉은 것도 아니면서, 묘하게 차분하고 착 가라앉은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새벽에는 잔잔한 호수 같은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 새벽 특유의 고요한 분위기, 나는 이런 분위기 속에 스며드는 것을 좋아한다.


새벽에는 특유의 색깔이 있다. 나는 새벽을 푸르스름한 청회색으로 상상하곤 한다. 아직 동이 트지 않았거나 동이 튼 지 얼마 안 되어서 햇빛이 세상에 색깔을 입히기 전. 그래서 묘하게 흑백인 듯도 한데, 칙칙한 회색이 아니라 안정감을 주는 톤이다. 아직 꺼지지 않은 가로등이나, 몇몇 개만 켜진 아파트의 불빛 같은 희고 노란 빛깔들이 약간 섞여 든다. 하지만 한밤중처럼 밖이 완전히 어두운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새벽을 밝히는 이 빛들은 환히 빛나는 것이 아니라 배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듯이 어스름하다. 나는 이 청회색 빛깔 새벽을 좋아한다.


새벽에는 특유의 온도와 습도가 있다. 새벽 공기는 축축하고 차갑다. 이슬이 내려서 약간 물기가 있고, 또 밤새 식은 땅이 아직 데워지기 전이라 차가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새벽 공기는 살을 에는 듯한 차가움이나 불쾌한 습기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아주 기분 좋은 축축함과 차가움이다. 날씨 좋은 가을날에 머리를 반쯤만 말리고 밖에 나갔을 때 머리카락 사이로 바람이 불어와서 시원한 느낌이 들 때와 비슷한 공기가 새벽에는 있다. 그래서 새벽에는 상쾌한 기분이 든다. 물론 잠을 설쳤거나 피곤하다면 그런 가뿐한 느낌이 안 들 때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새벽에는 기분이 좋아진다.


또 새벽은 가능성의 시간이다. 아직 오늘 하루가 내게 온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이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이미 나는 지쳐 있고, 그날 있었던 일을 돌아보느라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 어렵다. 그래서 저녁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도, 그 시간이 나만의 것이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하지만 새벽은 다르다. 아직 별다른 일이 일어나기 전, 아직 하루를 보내며 피로를 쌓기 전, 오늘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져 있는 이 시간은 내가 나를 위해 온전히 쓸 수 있는 시간이다.


오늘 새벽, 나는 일찍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글을 썼다. 그리고 이제 내 앞에 아직 시작되지 않은 하루가 놓여 있다. 오늘 하루는 과연 어떤 하루가 될 것인지 궁금하다. 새벽은 이렇게, 기대감을 품고 문을 열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

2023년 2월 22일,

침대에 기대앉아서 고요를 즐기며.



*커버: Image by Maren G. Bergman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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