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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Feb 23. 2023

[D-312]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54번째 글

삶이 네게 레몬을 준다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라(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는 표현이 있다. 삶을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사는 게 힘들고 고생스러워도 그것을 기회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라는 뜻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게 나으니까.


그런데 가끔은 받은 레몬을 레모네이드로 만들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한 기분이 들 때 말이다. 이럴 땐 삶이 너무 벅차고 힘들고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손에 레몬을 쥐고 가만히 있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아니, 가끔은 이 레몬 한 개마저도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져서 땅에 툭 떨어트리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예전에는 이럴 때는 무기력과 피로를 해결하기 위해 더 힘차게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운을 내서 칼질을 하고 레몬을 씻고 레몬즙을 짜내고 얼음을 얼려서 빨리 레모네이드를 만들 준비를 하는 것만이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생각이 달라졌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느껴질 때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시 머물러도 괜찮은 것 같다. 레몬을 들고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 그 무게조차도 감당하기 어렵다면 잠시 땅에 내려놓아도 괜찮고. 잠깐 땅에 레몬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한순간에 레몬이 썩어 버리거나 땅이 뒤집혀 버리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또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내가 내려놓은 레몬에서 싹이 자라서 레몬 나무를 키우게 될 수 있을지도. 그래서 수백 잔의 레모네이드를 만들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해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기력이 다 빠져서 지금 이 상태로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진다면, 정말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겠다고 느껴진다면, 잠깐 쉬어도 괜찮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 이런 마음가짐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의 해결 방법인 것 같다.



/

2023년 2월 23일,

침대에 엎드려서 유튜브로 노래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NoName_13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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