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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Feb 24. 2023

[D-311] 내게 보상을 주는 옳은 방법

55번째 글

오늘은 나를 위해 선심을 좀 썼다. 특히 음식 면에서.


원래 나는 요즘 건강상의 이유로 탄수화물이나 튀긴 음식, 달콤한 음식을 거의 먹지 않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평일 점심과 저녁은 회사 사내식당에서 먹는데, 샐러드 바에서 주는 야채를 아무런 드레싱 없이 한 접시를 먼저 먹는 것으로 매 끼니를 시작한다. 야채의 식이섬유를 통해 포만감을 얻어 전체 식사량을 줄이면서, 채소 섭취 비중이 높은 건강한 식사를 하기 위해서다. 야채를 다 먹고 나면 고기나 생선 등의 본식을 약간 먹는데, 이때 밥은 거의 한 숟갈 정도만 곁들인다. 또 짜고 자극적인 메뉴나 너무 기름진 음식은 피하고, 튀긴 반찬은 잘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침도 계란과 우유 같은 단백질 위주로 먹은 지 꽤 오래되었다. 군것질은 전혀 안 하고, 탄산음료에도 손을 대지 않는다. 커피도 바닐라 라떼처럼 시럽과 크림이 들어간 종류는 먹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상당한 일탈을 했다. 아침까지는 평소처럼 계란과 우유를 먹었지만, 카페에서 라떼를 사 와서 마셨다. 점심은 사내식당에서 특별 메뉴로 나온 수프 카레를 먹었는데,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을 먹었고 반찬으로 나온 새우튀김에도 젓가락을 뻗었다. 그리고 카페에서 커피가 아니라 달달한 주스를 사서 마셨다. 일하는 중간에 초콜릿도 꺼내 먹었다. 저녁은 회사 근처 식당에 가서 튀김덮밥을 먹었다. 내가 평소에 하지 않으려고 정해 두었던 것들을 오늘 여러 개 어겼다.


내가 이렇게 규칙을 어긴 이유는 내게 보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번 주는 일이 조금 바빠서 정신없이 보냈고, 나를 위한 휴식 시간도 잘 내지 못했고, 잠도 잘 못 자서 피곤했고, 여러모로 지쳐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내게 맛있는 음식이라는 보상을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사실 결정이라기보다는 충동적인 선택에 가깝기는 했지만. '내가 이렇게 노력했고 이만큼 힘들었으니까, 이 정도는 먹을 자격이 있어.' 이런 생각으로 나는 내게 맛있는 식사라는 보상을 내려주었다.


하지만 라떼를 먹으면서 나는 마음이 불안했다. 혀끝에 와닿는 우유의 맛에 즐거우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또 식당에서 배부르게 먹고 자리로 돌아가면서 나는 후회했다. 배가 부른 기분이 불쾌하게 느껴졌고, 내 건강이 염려되었다. 아직 그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는데 벌써 규칙을 어겨버린 내 나약한 의지가 실망스러웠다. 오랜만에 짜고 달고 기름진 음식을 먹어서 그런지 속도 불편하게 느껴져서 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돌아온 지금, 나는 내게 보상을 주는 올바른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이런 순간적인 자극으로 내게 보상을 주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식이라면 잠깐만 행복하고 더 길게 불행하니까 말이다. 라떼를 한 모금 넘기는 바로 그 순간, 튀김을 혀에 올려놓는 바로 그 순간에는 행복감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순간이 지나 버리면 즐거움보다는 후회가 더 길게 남게 된다. 이런 짧고 일시적인 신체적 자극보다는 더 길게 갈 수 있는 장기적인 보상이 내게 더 큰 만족감을 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면, 나 자신을 위해서 저금통을 하나 만들고 만 원씩 넣을 수도 있다. 그러면 돈이 모여서 언젠가 나를 위해서 쓸 수도 있을 테니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듣거나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다시 보는 식으로 정신적인 만족감을 주는 방식도 괜찮은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좋아하는 노래가 있으면 백 번씩 듣기도 하는데, 나는 반대로 정말 좋아하는 노래가 있으면 아껴 두는 편이다.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의 기분을 간직해두고 싶어서, 너무 자주 들으면 그 설레는 감정을 잃어버리게 될까 봐 자주 듣지 못하고 아껴 둔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내가 나 자신에게 무언가 보상을 줘야겠다 싶으면, 그렇게 아껴 둔 노래를 틀어서 감상하는 거다. 그렇게 설렘과 행복과 두근거림을 느끼는 것도 상당한 보상으로 작용할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내가 오늘 선택한 보상 방법은 내가 아직 나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아서 저지른 일이 아닐까 싶다. 만약 내가 나를 더 소중히 여겼다면, 예를 들어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는 자애로운 엄마처럼 나를 사랑해 주었다면, 아마 나는 이렇게 '맛은 있지만 건강에 나쁜' 음식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딸에게 가장 좋은 것만 먹이고 싶어 하니까. 엄마는 사랑하는 딸이 건강했으면 좋겠어서, 최대한 건강한 재료로 건강한 식사를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딸이 편식을 하거나 폭식을 하면 잔소리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나는 나를 딸처럼 여기고 아껴 줄 필요가 있다. 내게 보상을 줄 때는 더더욱. 지금 당장 맛있는 것을 먹으며 짧고 순간적인 행복을 구하기보다는 훨씬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극보다는 사랑을." 내게 보상을 주고 싶어질 때마다 이 깨달음과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을 기억해 두어야겠다.



/

2023년 2월 24일,

책상에 앉아서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Steve Buissinn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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