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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Feb 25. 2023

[D-310] 솔직함과 무례함은 다르다

56번째 글

나는 스스로 솔직하기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여기저기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는 뜻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잘 하지 못하고 참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 내 감정과 내 생각을 주변에 잘 드러내지 못한다. 이건 어느 정도는 의도적인 부분도 있긴 하다. 나는 방어적인 사람이고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내 솔직한 모습을 공개하는 것을 꺼린다. 내가 내보인 모습을 보고 상대방이 돌아설까 봐, 그래서 내가 상처를 받게 될까 봐 걱정돼서다. 나는 솔직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잘 꺼내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솔직해지고 싶다. 하지만 이 '솔직함'에 대한 추구는 독설을 일삼는다거나, 아무렇게나 욕을 한다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마구 내뱉는 것과는 다르다. 사람들은 때로 솔직함과 무례함을 혼동하는 것 같다. 솔직하다는 것은 내 기분을 기꺼이 공유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례하게 행동하고 막말을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 내게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고 솔직한 피드백을 말해 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그런데 그 사람의 실력이 그다지 좋지는 않아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줘야 하는 상황이다. 이 때 '건반을 정확히 눌러서 좋은 소리를 내야 하는데 그 부분이 부족한 것 같아. 좀 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네.'라고 말하는 것은 솔직함이다. 하지만 '네 연주 실력은 쓰레기 같아. 그렇게 할 거면 때려치워라.'라고 말하는 것은 무례함이다.


비판의 목소리를 낼 때도 마찬가지다. 나와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는, 내 기준으로는 아주 잘못되고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의견을 표현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요.'라던가 '방금 그 말이 불편하게 느껴졌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솔직함이고, 내 생각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용감함이다. 하지만 굳이 '이 X신 같은 개X끼가 뭐라고 지껄이냐?'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받아쳐 버리면 그 뒤로는 더 이상 진지한 대화나 의견 교환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된다. 그저 감정 싸움과 인신공격만이 계속될 뿐이다.


솔직하다는 것은 예의 없이 아무렇게나 말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같은 맥락으로, 공손하고 친절한 태도를 보여준다는 것은 나약하고 우유부단하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친절한 태도와 정중한 말투를 가지고서도 충분히 솔직해질 수 있고, 얼마든지 신랄하게 비판하고 강하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 내 감정과 내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무례해질 필요는 없는 거다. 솔직한 태도를 갖추면서도 다른 사람을 충분히 배려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이건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고발할 때나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할 때 '예쁘게' '듣기 좋게' '둥글게' 말해 달라고 요구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요구는 터무니없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은 이런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지 우리 모두가 친절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대화를 할 때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매너가 있다는 것이고, 솔직함과 무례함은 별개의 영역이라는 것뿐이다. 부드러움과 나약함이 별개의 영역인 것처럼 말이다.


나는 솔직해지고 싶다.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싶고, 내 의견을 당당히 말하고 싶고, 내 감정을 털어놓으며 공유하고 싶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친절해지고 싶고, 배려하고 싶고,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 내게 그럴 용기만 있다면 얼마든지 두 가지를 다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

2023년 2월 25일,

식탁에 앉아서 팟캐스트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tookapic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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