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Mar 01. 2023

[D-306]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서로 다른 이유

60번째 글

*영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22년 봤던 영화 중에서 최고의 영화를 딱 한 편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브리띵>)을 꺼내 들 것이다. 내 주변에서도 이 영화를 '인생 영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정말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왜 이 영화를 좋아하냐고 주변에 물어보면 똑같은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어떤 사람은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에블린과 조이의 모녀관계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엄마와 딸의 미묘한 관계를 정말 잘 캐치해 내서 공감이 간다고 말이다. <에브리띵>에서 조이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가끔은 엄마가 밉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껄끄럽기도 하고 엄마에게 상처를 받기도 한다. 또 상처를 주는 엄마에게 실망하면서도 관계를 끊고 싶어 하기보다는 엄마의 인정과 이해를 받고 싶어 하고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어 한다. 에블린은 딸을 사랑하는 헌신적인 엄마지만 딸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때로는 딸의 모습이 기대에 차지 않는다. 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딸이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고 만다. 하지만 에블린은 조이를 사랑하기에 모든 곳에 모든 것으로 존재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에서 조이와 함께하기를 선택한다. 이런 모녀간의 애증 섞인 관계 묘사 때문에 <에브리띵>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모녀관계보다도 영화가 묘사하는 '멀티버스' 설정 자체가 정말 큰 위안이 된다고 했다. 이 우주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거대하며, 내가 경험한 선택지마다 새로운 우주가 가지를 쳐 나가고 있다는 설정이 좋다고. 극 중에서 알파-웨이먼드는 에블린에게 '당신의 그 모든 거절과 실망들이 지금 여기로 당신을 이끌었다'라고 말한다. 이 대사에 깊은 인상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우주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나 스스로의 선택으로 도달한 나만의 우주이고, 다른 우주에는 또 다른 '나'가 다른 삶을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위안이 되어서 좋다고 했다.


또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친절함'에 대한 메시지가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영화는 웨이먼드 캐릭터를 통해서 친절함을 보여주는 것은 나약하고 어수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용기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 그래서 친절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아주 단순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삶이 혼란스럽고 힘들수록 친절해야 한다고 말이다. 친절함을 무기로 삼아서 살아가는 태도와 그럴 수 있는 용기는 차갑고 팍팍해진 요즘 세상에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다. 이 부분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조부 투바키가 느끼는 무거운 공허와 우울에 공감하기도 했다. 너무나도 외롭고 피로하고 힘들어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고 느껴지는 그 감정에 공감한다고. 그래서 가끔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그저 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영화가 그 부분을 깊이 있게 묘사하고 시각적으로 표현해 주어서 좋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거대한 허무와 우울에 잠겨서 이 세상을 등지고 싶어 하는 조부의 모습, 하지만 누군가 자신이 느끼는 것을 느끼고 자신이 보는 것을 봐주었으면 하는 조부의 모습,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붙잡아주고 '아니'라고 말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귀띔해 주기를 바라는 조부의 모습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영화에 나오는 'Nothing matters'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깊이 파헤치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라는 깨달음을 얻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이 중요하다'까지 도달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탐색에 흥미를 느낀다고 말이다.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 개념과 연관 지어서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나 자신이 너무나도 작게 느껴져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발전시켜서 '나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누군가는 영화에 등장하는 아시아계 이민자 가정의 묘사에서 공감대를 찾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영화 속에서 그려내는 에블린과 웨이먼드의 로맨스에 가슴 설레어하기도 했다. 또 백인이 아닌 타 인종을 주연으로 내세운 것이나 여성 주인공이 풀어내는 여성 서사라는 점에서, representation 면에서의 의미를 아주 높게 평가해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영화가 이야기하는 메시지 자체보다도 영화로서 줄 수 있는 경험이 좋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전까지 보지 못했던 참신한 시각과 표현법을 마음에 들어 하기도 했고, 영화 내내 휘몰아치는 꽉 찬 줄거리와 시각 효과, 짜임새 있는 구성과 떡밥 회수 등이 좋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에브리띵>이 유쾌하게 담아낸 B급 영화의 정서와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좋아하기도 했다. 또는 기존 홍콩 영화의 패러디 등 영화가 담고 있는 많은 팝컬쳐적인 요소들을 좋아하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는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서로 다른 것을 보고, 같은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서로 다른 이유로 좋아한다. 서로 살아온 인생이 다르다 보니 취향도 다르고 겪은 경험도 다르고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 많은 감상들 중에서 그 어떤 것도 혼자 '옳은' 것은 없다. 이 모든 감상들이 모두 옳다.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감상평이라도 누군가 영화를 보고 그렇게 느꼈다면, 그 평은 그것만으로도 존중받을 만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의 감상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듣는 것도 좋아하고, 내가 싫어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의 이유를 듣는 것도 좋아하고, 내가 싫어하는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의 이유를 듣는 것도 좋아한다. 같은 감상을 나누면서 공감하는 것도 즐겁고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알게 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취향을 무시당하거나 '틀렸다'고 손가락질당할 걱정 없이 자유롭게 작품에 대한 감상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

2023년 3월 1일,

소파에 앉아서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WikiImages from Pixabay

작가의 이전글 [D-307] 나는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