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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Feb 28. 2023

[D-307] 나는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59번째 글

며칠 전, 나는 누구에게도 나 자신을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글 보러가기) 누구에게도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고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아는 것과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것은 달라서 이 사실을 알면서도 뭔가를 증명해 내려고 쩔쩔매고 있는 중이라고, 어떻게 이걸 극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고 적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나서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사실 글을 쓰기 전부터 고민하고 있긴 했다. 원래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해답을 대강이라도 찾고 나서, 그 내용을 글로 적어 보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은 잘 모르겠어서 그냥 포기하고 글을 써 버렸다. 최근에 워낙 바빴어서 좀 피곤하기도 했고 머리도 아파서 더는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모르겠다는 것도 결론이라면 결론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그렇게 그날의 글을 다 쓰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내가 초점을 잘못된 곳에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욕구를, 뭔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집착을 내가 버릴 수 없는 이유는, 내가 그동안은 세상을 '증명하는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바라보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뭘 할지, 뭘 보여줄지, 뭘 증명할지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증명을 하고 싶었던 거다. 그게 뭐든지 상관없이 그럴듯하기만 하면 됐었다는 건데, 생각해 보면 정말 무책임하고 계획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뭔가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증명하는 것. 나는 이 '뭔가'에 더 초점을 맞췄어야 했다. 내가 어떤 가치를 바라보고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낼지를 고민한다면 더 이상은 증명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게 된다. 단지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함께 나누는 것만이 중요해지게 된다. 이 생각을 하고 나자, 예전에 인상 깊게 읽었던 "Make things worth sharing(나눌 가치가 있는 것들을 만들어 내라)."라는 문장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말하는 방식을 약간 바꾸기로 했다. '나는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말하기보다는 '나는 이 일을 해서 그 과정과 결과와 감정을 나눌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더 이상은 나 자신을 정의하고 전시실에 세워서 보여주고자 하는 오만한 강박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그저 내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는 현실적인 과제만이 앞에 남게 된다. 나는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다. 자아를 이렇게 인식하는 것이 훨씬 더 건강한 방식인 것 같다.



/

2023년 2월 28일,

식탁에 앉아서 유튜브로 음악을 들으며.



*커버: Image by NoName_13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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