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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r 02. 2023

[D-305] 한계를 벗어나라는 말의 함정

61번째 글

"너 스스로를 더 격하게 몰아붙여야 해." "너를 한계까지 몰아붙여 봐." "너 자신을 더 채찍질해야 해." 이런 말들을 우리는 종종 듣곤 한다. 특히 자아실현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더더욱. 한계는 우리가 스스로 정해 놓은 울타리이고, 나 자신을 채찍질해 그 울타리를 넘어서야만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나 역시도 이 말에 공감하는 편이었다. 나는 나만의 안전지대가 확고한 편이라, 그 울타리를 넘고 새로운 것과 내 한계에 도전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푸야 모세니(Pooya Mohseni)의 말을 듣고 내 저런 생각이 얼마나 오만하고 나이브했는지를 깨달았다. 푸야 모세니는 뉴욕을 근거지로 예술 분야에서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 작가, 아티스트이며 인권 운동에 헌신하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푸야는 이란 출신의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이 네 단어만으로도 푸야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겪어 왔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청소년기에 여러 차례 자살 시도를 했고, 90년대에 이란을 떠나기 전에는 경찰에 여러 번 체포된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푸야는 투쟁을 멈추지 않았고, 여전히 싸우고 있다.


푸야는 "너를 한계까지 몰아 불여라."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인해 고통받고 있고, 이미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가혹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그 사람들에게는 당장 살아남는 것 자체가 당면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에게는 "한계까지 몰아붙이라"는 말은 그 어떠한 의미도 되지 못한다. 그래서 푸야는 누군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네가 살아온 인생이 정말 평탄하고 행복했었나 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약간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나를 채찍질하려고 했던 수많은 시도들은 생각해 보면 아주 오만한 일이었다. 내가 정말 우연하게도, 그리고 아주 운 좋게도 괜찮은 나라에서 괜찮은 가정에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푸야의 말을 듣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편하게' 살아왔는지를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온실 속 화초처럼, 우물 안 개구리처럼, 꽃밭 같은 머리를 가지고 살아왔는지를.


푸야의 말을 듣고 연극 <OiL>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OiL>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겸손해지기 위해서 사막씩이나 필요했니?" 중동을 상대로 공격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는 영국 장관 메이의 딸 에이미는 그런 엄마에게 반항하기 위해서 일부러 중동으로 여행을 가서 그곳에 머무른다. 에이미는 그곳에서 만난 현지인 여성에게 사막을 바라보면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것처럼 느껴져서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여성에게 그런 에이미의 말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자격증도 있는 엔지니어였지만 전쟁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고 가난과 굶주림과 공습의 공포에 시달리며 병원에서 빨래를 하며 살아가는 그 여성에게 에이미의 그 말은 오히려 비웃음만을 살 뿐이다. 그래서 그는 에이미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막에 오면 네가 작아지는 것처럼 느껴져서 좋다고 했지? 겸손해지기 위해서 사막씩이나 필요했니?"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살아갈 때가 많다. 나도 그랬다. 나는 단지 운 좋게도 괜찮은 삶에 당첨되었을 뿐인데, 내가 가진 것들은 나의 노력으로 얻어낸 것들보다도 우연히 갖게 된 것들이 많은데,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그 사실을 간과하고 살아가고 있다. 내가 짊어진 조약돌만한 삶의 무게를 무겁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건방지고 오만했고, "겸손해지기 위해서 푸야씩이나 필요했다."


물론 누구나 자신만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이 십자가의 무게를 서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무의미한 일이다. 그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내가 부끄러웠다. 한계까지 몰아붙이라는 말에 내가 공감했었던 이유는 어쩌면 나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상황 속에 단 한 번도 서 있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내가, 그것도 누가 직설적으로 말해 주기 전까지는 스스로 알아내지 못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는 조금 더 겸손해질 수 있기를 바라 본다.



/

2023년 3월 2일,

버스 안에서 바퀴와 땅이 마찰되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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