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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r 03. 2023

[D-304] 내가 좋아하는 것들

62번째 글

오늘은 피곤한 날이다. 피곤한 아침이다. 어제 야근을 했고 밤에도 잠을 설쳤다.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서 그런지 약간 신경이 곤두선 상태다. 오래 일해서 목도 아프고 눈도 아프다. 특히 잠을 잘 못 잤다 보니 눈이 뻑뻑하고 자꾸 감기는 듯한 느낌이다. 갑자기 또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허탈함과 피로가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아직은 쉴 수가 없다. 오늘은 금요일이고 비록 마음만은 주말을 즐기러 떠나 버린 상태일지언정 몸은 직장에 가서 일을 해야만 한다. 촉박한 마감 일정 때문에 경고등을 깜빡거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들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힘을 내서 오늘 내게 주어진 과제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치워야 한다.


이럴 때는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려야 한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노래 'My Favorite Things'의 가사처럼. 몸과 마음이 힘들고 슬플 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괜찮아 보이도록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음악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그리고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를.


나는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음악이던 상관없다. 선호하는 장르는 있고 또 기분에 따라 듣고 싶은 음악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음악이라는 범주에 포함되는 거의 모든 것들을 좋아한다. 음악을 들으면 가랑비를 맞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조금씩 조금씩 스며드는 기분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내가 음악에 흠뻑 젖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는 그 음악에 잠기는 기분을 좋아한다.


나는 타악기 소리를 좋아한다. 타악기의 리듬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북 소리, 드럼 소리, 봉고 소리, 캐스터네츠 소리 같은 것들. 타악기 소리는 나를 흥분시킨다. 아주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감정으로 나를 이끈다. 그래서 타악기 소리를 들으면 짜릿함이 느껴진다.


나는 저음의 악기를 좋아한다. 베이스, 첼로, 콘트라베이스, 바순 같은 저음역대의 악기 소리를 좋아한다. 이런 소리는 감정을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소리가 울려 나오는 듯한 그 저음역대 악기 특유의 깊이감을 나는 좋아한다. 나는 저음의 목소리도 좋아한다. 바리톤이나 베이스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의 묵직한 노랫소리를 좋아한다.


나는 악기 연주나 노래를 직접 들으러 가는 것도 좋아한다. 길거리에서 이어폰으로 듣는 것도 좋고 집에서 핸드폰이나 노트북으로 음악을 틀어 두는 것도 좋고 스피커로 듣는 것도 좋지만 라이브 연주를 훨씬 더 좋아한다. 라이브 연주에는 생동감이 있다. 그래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거나 콘서트, 뮤지컬, 오페라 등을 보면 마치 연기처럼 생명력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는 느낌이 든다. 연주자들이 음악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객석에 앉은 나에게 전달해 주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것도 정말 큰 쾌감을 준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이 젖은 흙 위에 수건을 올려놓아 수건이 수분을 흡수해서 축축해지는 것이라면,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음악을 듣는 것은 거대한 파도에 덮쳐지는 것이다. 나는 이 음악의 파도에 휩쓸리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나는 노래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다지 노래 실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멜로디와 가사를 내 몸에서 뱉어 내는 것이 즐겁다. 그냥 별생각 없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도 즐겁고 본격적으로 노래방에 가서 부르는 것도 즐겁다. 노래를 통해서 내 감정을 분출하거나 내 감정을 해소할 수 있어서 후련해지는 기분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서 짧게나마 적어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 하루를 견뎌 낼 수 있을 것 같다. 긴 하루가 될 예정이지만 그래도 나는 오늘 아침 노래를 들으며 출근을 해서 행복했고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서 행복했다. 그것만으로도 나름대로 괜찮은 하루가 되지 않을까.



/

2023년 3월 3일,

버스 안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커버: Image by Steve Buissinn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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