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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r 05. 2023

[D-302] 시작의 어려움과 완성의 어려움

64번째 글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과 무언가를 끝마치는 것 중, 무엇이 더 어려울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단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과, 이미 시작한 것을 꾸준히 끝까지 잘 해내는 것. 이 둘 중에서 과연 어떤 것이 더 어려울지 궁금하다. 물론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아마 다 다를 것이다. 이런 비교가 의미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갑자기 그냥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혼자 고민하기보다는 옛날 사람들의 지혜가 가득 담겨 있는 속담에서 한번 답을 찾아볼까 싶었다. 그래서 시작과 끝에 대해서 어떤 말이 있는지를 떠올려보았다.


우선, 시작과 관련해서는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같은 뜻의 한자성어 '작시성반(作始成半)'도 있고, 영어 속담 'Well begun is half done.'도 있다. 또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비슷한 의미의 속담도 있다. 일단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시작만 해도 절반은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 나왔을까? 시작하기로 결심하는 것과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서 시작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끝과 관련해서는 우선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표현이 있다. 아마 유종의 미를 잘 거두기가 쉽지 않으니 이런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또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도 있고,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도 있다. 한번 시작해 놓은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런 말이 생겨난 것이 분명하다. 생각해 보니 <일리아드>나 <삼국지> 같은 고전들에 나오는 영웅들의 말로도 좋지 못한 경우가 많다. 무엇이든지 끝까지 잘 끌고 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옛 현인들로부터 답을 찾는 것은 잠깐 보류해 두기로 했다. 그리고 나 혼자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다가 시작과 완성 두 가지가 어려운 포인트는 완전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일대일로 비교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말이다.


시작의 어려움은 두려움의 극복에 근본을 두고 있다. 시작하려는 그 대상에 대해서 잘 모르고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생기는 미지에 대한 공포가 시작을 어렵게 만든다. 과연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함과 같은 것들 때문에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시작만 해도 일단 절반은 왔다는 말이 생긴 게 아닐까.


그리고 완성의 어려움은 지속력에 기반하고 있다. 내가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 마무리하려면 끈질김과 인내심 등 유지에 대한 의지가 필요하고, 또 끊임없이 변하는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은 쉽지가 않다. 처음에 마음을 굳게 먹고 시작했어도 꾸준히 지속하기 어렵고, 쉬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과 변해가는 내 상태를 잘 지켜보고 반영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무언가를 완성하고 끝을 맺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시작이 어려운지, 완성이 어려운지 비교하는 것은 전적으로 사람의 성향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내가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에 더 애를 먹는 성향이라면 시작하는 것이 더 힘들 것이고, 지속력을 갖추는 것을 더 어려워하는 성향이라면 완성하는 것이 더 힘들 것이다. 그래서 시작을 어려워하는 사람과 완성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각각 다른 것 같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이제는 그걸 생각해 보고 있다.



/

2023년 3월 5일,

창문을 바라보고 앉아서 창 밖의 소음 들으며.



*커버: Image by StockSnap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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