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Mar 06. 2023

[D-301] 옳고 그름의 관념 저 너머에

65번째 글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주인공인 마리아와 토니는 서로 사랑에 빠지지만, 서로가 속한 두 집단(폴란드계인 토니와 푸에르토리코계인 마리아)의 갈등 때문에 이들의 사랑은 쉽지 않다. 일련의 비극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고, 마리아와 토니는 함께 어퍼웨스트사이드를 떠나 도망치기로 한다.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있는 그 어딘가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마리아와 토니는 'Somewhere'라는 노래를 부른다.


There's a place for us
Somewhere a place for us
Peace and quiet and open air
Wait for us somewhere

There's a time for us
Someday a time for us
Time together and time to spare
Time to learn, time to care

우리를 위한 곳이 있을 거야
어딘가에는 그런 곳이 있을 거야
평화롭고 고요하고 탁 트인 곳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우리를 위한 시간이 있을 거야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거야
우리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Somewhere' 중에서.


나는 이 노래의 가사를 좋아한다. 손드하임이 쓰는 가사는 때로 평범한 단어 몇 개로 가장 절실하고 진솔한 감정을 드러낼 때가 있다. 내가 특히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절망에 빠진 두 연인이 "이곳에는 희망이 없으니 여기를 떠나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있는 어딘가로 떠나자"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괴롭고 지치고 좌절감과 무력감이 들지만 마리아와 토니는 어딘가에서는 그들이 평화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그래서 그들을 죄어오는 갈등과 혐오, 폭력, 다툼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그래서 그저 사랑할 수 있으리라고 노래한다. 비록 두렵고 불안하고 확신이 없을지라도.


이 노래를 들으면 생각나는 시구가 하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루미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옳고 그름의 관념 너머에는 어느 들판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을 만나겠습니다.

- 잘랄 앗 딘 루미


우리는 서로를 너무 쉽게 판단한다. 그 사람의 나이, 성별, 인종, 직업, 성적 지향, 국적, 출신지, 종교, 신체적 특징, 경제적 조건과 같은 정보를 얻으면 그 사람을 '안다'고 생각한다. 너무 쉽게 누군가를 정의하고 꼬리표를 붙인다. 나와 다른 사람이 있다면 그 '다름'을 이유로 혐오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처럼 생각한다. 세상을 흑백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도덕적 기준이나 생각으로 판단하기에 옳지 않은 것이 있다면 무조건 나쁘다고 몰아간다. 그 전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그 옳고 그름을, 우리가 너무나도 쉽고 간단하게 단숨에 판단해 버리는 옳고 그름을 한 꺼풀 벗겨내면 그 아래에는 사람이 있다. 똑같이 붉은 피와 단단한 뼈를 가진 사람이.


오늘 어떤 기사를 읽다가, 혐오를 가득 표출하는 댓글을 읽었다. 그래서 과연 혐오는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혐오는 무지에서 나오기도 하고, 두려움에서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무지와 두려움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자존심에서 나오기도 한다. 또 내가 이미 가진 것을 조금도 빼앗기고 싶어 하지 않는 욕심과 이기주의에서 나오기도 한다. 때로는 '내가 옳고 너는 틀렸어'라는 도덕적 우월감에서 나오기도 한다. 이 모든 원인들의 공통점을 고민하다 보니 전부 이해의 부족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들으려 하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하는 데에서 혐오가 터져 나온다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잘 들을 필요가 있다. 들을 가치조차 없는 말처럼 들리더라도 일단 한번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들을 가치가 없는 말을 들어 보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옳고 그름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잠시 보류한 뒤 그 너머를 잠시 바라보면,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이야기하는 그 어딘가, 그 'Somewhere'는 멀리에 있지 않다. 그 아름답고 찬란한 곳은 바로 여기,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 자리에 있다. 우리가 혐오라는 삶의 방식을 놓아 버리고 그 대신 인생을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방법을 알아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마침내 화해하고 평화롭게 서로를 돌보아 주며 포용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We'll find a new way of living
We'll find a way of forgiving
Somewhere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용서하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어딘가에서는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Somewhere' 중에서.



/

2023년 3월 6일,

책상에 앉아서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Michaela from Pixabay

작가의 이전글 [D-302] 시작의 어려움과 완성의 어려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