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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r 10. 2023

[D-297] 인생의 해상도를 높여 가는 일

69번째 글

어린 시절에 나는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어른이 되면 지금 내가 들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되리라고 여겼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도 한참 지났는데 아직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직 충분히 성숙해지지 못한 탓일까? 어른으로 자라기만 하고 아직 어른스러워지지는 못했기 때문일까? 나는 어른이 되었고 어린 시절 나를 괴롭혔던 문제들의 일부는 해결되었지만 일부는 아직도 내 어깨 위에 그대로 얹혀 있다. 또 새로운 문제들도 그 위에 쌓이고 있고. 어린 시절 내가 막연히 기대했던 어른의 모습과 지금의 나는 많이 다르다. 약간은 닮았지만 상상했던 것과는 비슷하지 않다.


그렇다면 성숙해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른스러워진다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일까?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험과 노하우가 더 쌓여서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고,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어린 시절에는 일반 영화관 스크린 사이즈로 세상을 내다보았다면 어른이 되면 아이맥스 사이즈의 훨씬 큰 창으로 세상을 내다보는 그런 것일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어른이 된다고 해서 딱히 세상이 넓어지거나 시야가 넓어진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그보다는 세상을 좀 더 선명하게 보는 것에 가까운 것 같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모니터의 해상도가 높아지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256*144로 흐릿하게 보았던 세상을 이제는 426*240 정도로는 볼 수 있게 된 느낌. 그래서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고, 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닫고, 전에는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을 신경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기분이다. 가려져서 안 보이던 것을 장막을 걷고 보게 된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전부터 눈앞에 놓여 있었지만 미처 쳐다볼 생각도 하지 못했거나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했던 것을 이제 흐릿하게나마 볼 수 있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지만 나 자신을 바라볼 때도 그렇다. 더 어릴 때는 나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들수록 나 자신을 조금 더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어른이 되며 나를 조금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이해하지 못하고 나무라기만 했던 나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나를 조금 더 잘 관리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내 감정을 컨트롤하는 법, 그래서 나 스스로도 덜 상처받고 다른 사람에게도 덜 상처 주는 방법을 많이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점점 더 선명한 모니터를 갖게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지금 어렴풋하게 426*240의 해상도로 보이는 것들을 앞으로는 더 선명한 화질로 볼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하던 것을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도 무엇인지 몰랐던 것을 알게 될 거라고 말이다. 4k 화질 모니터처럼 아주 고화질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해상도가 올라간 640*480 정도로는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

2023년 3월 10일,

식탁에 앉아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들으며.



*커버: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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