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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r 19. 2023

[D-288] '나'라는 우주를 통제하는 법

78번째 글

오늘은 반성과 함께 글을 시작해야겠다. 어제 나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 어제 일과 게임과 SNS를 하느라 늦게 잤기 때문이다. 원래 그러려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 일찍 자려고 했다. 공연을 보고 와서 여유롭게 저녁을 먹고, 그날의 에세이를 다 쓰고, 노트북을 덮고 바로 씻고 자려고 했다. 그런 원대한 계획을 세웠었다. 그리고 거의 80%는 그렇게 해냈다. 딱 마지막 부분만 빼고 말이다. '바로 씻고 자는' 부분만 빼고.


문제는 내가 노트북을 덮지 못한 데에서 시작되었다. 글을 다 썼으면 그냥 덮었어야 했는데, 괜히 폴더를 정리하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전날 대강 마무리해 놓은 일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만 더 하면 훨씬 깔끔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주말인데도 일을 약간 건드렸다. 그러다 보니 잠이 깼다. 뭔가 더 재미있는 것을 하면서 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또 일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휴일에 일한 만큼, 오늘 밤은 더 격렬하게 놀아야겠다는 충동이 혈관을 타고 올라왔다. 어차피 잠도 다 깼으니 조금만 놀고 자면 괜찮을 거라는 합리화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나는 휴대폰 게임을 조금 하고, 밀린 SNS 구경을 좀 하고, 유튜브 영상을 좀 보았다. 분명 각각 10분 정도밖에는 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왜 시간이 이렇게 지나 버린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어젯밤 나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렸다. 분명 일찍 자고 푹 쉬어서 피로를 풀려고 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 결과 오늘 아침 나는 피곤한 눈을 비비며 깨어났고, 물밀듯이 밀려오는 후회와 자괴감에 빠져 자책했다. 나 하나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나는 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일 뿐인데, 그리고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나 자신인데, 그것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한 내가 너무나도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그렇게 나를 자책하고 있다가, 리처드 파인만의 이 시가 갑자기 떠올랐다. "I, a universe of atoms, an atom in the universe(나, 원자로 이루어진 우주, 이 우주를 이루는 원자)."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수많은 것들이 한데 모여 이루어진 우주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를 통제하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는 우주다. 인류가 우주를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해답을 내놓으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나도 나를 이해하고 통제하고 해석하기 위해서 쩔쩔매고 있다. 이 우주를 이해한다는 것이 쉽고 단순할 리가 없다. 우주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이 그리 간단하게 이루어질 리가 없다. 나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 까닭이다. 만약 내가 내 몸과 마음을 속속들이 다 알고 이해하고 있다면, 그래서 나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면, 나는 아마 사람이 아니고 신일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신도 이 우주를 완벽하게 통제하지는 못하고 있지 않나 싶다. 신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아마 신도 우주가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애를 먹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생각이 일종의 정신승리일 수 있지만, 또 다른 합리화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 죄책감을 덜어주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기력을 주기는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생각을 했다고 해서 내가 나를 통제하려는 시도를 그만두지는 않을 테니까. 이건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 이유를 가져다 붙이는 것이 아니라, 집착과 후회를 버리기 위한 노력의 일부다. '나'라는 우주를 상상하며 나는 다시 시도할 의지와 힘을 얻었다. 그래서 나는 이 우주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까다롭고 다루기 어렵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나'라는 우주를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

2023년 3월 19일,

소파에 앉아서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Arek Soch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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