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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r 20. 2023

[D-287] 스트레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

79번째 글

최근에 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다행히 엄청난 스트레스에 짓눌려 있다던가, 숨이 막힌다던가, 쓰러질 것만 같다던가 하는 그런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이 스트레스가 나를 긴장시킨다. 특히 요즘은 가끔씩 가슴이 두근거리는 기분을 느끼기도 해서 더 긴장하고 있다. 이 스트레스를 어떻게든 해소해야 할 것 같은데, 원인을 좀 파악하고 해결해야 될 것 같은데, 스트레스가 어디서 왔는지를 확실히 모르니 정확히 어디를 건드려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 그래서 답답하다.


그리고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또 다른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아무리 피곤하고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놓여 있어도, 한 번도 이렇게 두근거리는 기분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전보다 상황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스트레스가 덜해야 할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이 두근거림이라는 새로운 증상이 생겼다. 그래서 걱정이 된다. 내 건강이 걱정이 되고, 스트레스를 제때 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고,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서 또 걱정이 된다.


그래서 또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두근거림이 느껴지고, 두근거림 때문에 또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2차적 스트레스는 걱정을 동반하기 때문에 더 괴롭다. 불면에 시달리는 것과 비슷하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잠이 잘 안 오는데, 잠을 잘 못 자고 있다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또 그 스트레스 때문에 불면이 더 심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트레스가 나선형으로 증폭된다.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스트레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만 없어도, 이 2차적인 스트레스만 없어도 조금 편해질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2차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원인은 나 자신을 좀 더 신경 쓰고 무리하지 말라고 몸과 마음이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야만 그 부분을 케어해 줄 수 있으니까. 이런 메커니즘으로 삶이 돌아간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왜 굳이 그 신호가 또 다른 스트레스로 와야 하는 것일까. 새삼 인간의 설계 방식이 원망스럽다. 내 몸 상태, 내 정신 상태를 잘 신경 쓰고 세심히 케어하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법을 찾고 싶다.


완벽한 답은 아니지만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다. 바로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불면에 시달리면서도 불면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있는 비결이다. 잠을 반드시 잘 자야 한다는 생각을 조금 내려놓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물론, '잠을 반드시 잘 자야 하는 건 아니니까 오늘도 밤을 새울래!' 같은 방식이면 곤란하다. 내가 잠을 잘 못 잤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아, 오늘 잘 잤네.'라는 식으로 부정하는 방식은 더 부적절하다. 그게 아니라, '어제 잠을 잘 못 잤네? 뭐,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잠을 잘 못 잔 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고, 이미 일어난 일을 내 능력으로 바꿀 수는 없으니,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분리'가 필요하다. 사실을 파악하는 일과 그 사실에 감정적 영향을 받는 일을 분리하는 과정이다. 잠을 잘 못 잤다는 사실은 나의 건강을 위해서 파악해 두어야 한다. 잠을 잘 못 잤으니 그만큼 내 몸 상태를 더 신경 써서 관찰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사후 대처는 꼭 필요하다. 다만 이런 대처를 하면서 굳이 죄책감이나 후회나 스트레스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 문제만 파악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 굳이 감정을 섞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모든 일이 늘 그렇듯이 말하는 것은 쉽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어렵다. 집착을 버리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 어렵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방법이 어느 정도 통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시도해 보지 않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시도해 보는 중이다. 마음을 비우고 나를 좀 내려놓고 집착을 버리는 법을, 그래서 스트레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법을 말이다.



/

2023년 3월 20일,

버스에 앉아서 차들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Engin Akyurt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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