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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r 24. 2023

[D-283] 사소한 일일수록 낙천적으로

83번째 글

오늘은 아침부터 운이 별로 좋지 않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사소한 부분에서 운이 나빠서 소소하게 짜증이 나는 경우. 버스를 놓친다던지, 주문하려던 메뉴가 내 앞에서 품절된다던지, 옷 단추가 떨어진다던지, 신발끈이 자꾸 풀린다던지, 머리카락이 자꾸 뻗쳐서 신경 쓰인다던지 하는 작은 일들 때문에 일상의 한 부분이 약간 어그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고, 그 때문에 약간의 짜증이 뻗쳐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경우이다. 이런 사소한 불운이 몇 가지 겹치는 날도 있는데, 그러면 또 그 짜증과 스트레스가 꽤나 커지게 된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는데 수도꼭지에 손끝이 잘못 부딪혀서 손톱 하나가 갈라졌다. 버스 시간을 잘 확인하고 집에서 나왔는데 버스가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것인지 눈앞에서 버스를 놓쳐 버렸다. 그래서 다음 버스가 오기까지 십 분이 넘도록 서서 기다려야 했다. 심지어 갈아탈 때도 버스 시간이 안 맞아서 결국 회사까지 십오 분 정도를 걸어가야 했다. 아침부터 하루의 단추를 잘못 끼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몇 가지 일상적인 불운이 짜증을 돋울 수도 있었던 날이었다.


하지만 이럴 때 불운에 대처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바로 의식적으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다. 거의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지나치게 해맑고 순진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이런 짜증을 미리 방지할 수 있다.


그래서 손톱이 부딪혀서 갈라졌을 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원래 손톱을 깎아야 할 때가 되었지만 바빠서 까먹고 있었던 것을, 마침 손톱이 갈라진 탓에 리마인드가 되었다고 말이다. 지금 안 갈라졌으면 손톱이 길어서 오늘 오후쯤에 아예 부러지거나 하루 종일 불편했을 수도 있는데, 마침 지금 갈라져서 깎을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괜히 '아, 왜 아침부터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짜증 나.'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그렇게 믿기로 결정했다.


버스를 놓쳤을 때는 이 우주가 내게 여유를 가지라고 말하고 있나 보다고 생각했다. 요새 일이 바빠서 약간 급한 마음으로 살고 있었는데 그런 마음을 좀 내려놓고 여유를 가지라는 의미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밀린 카톡도 읽어야 하고 인스타그램도 확인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정류장에 서 있는 동안 하면 되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결정했고 다른 생각을 할 필요 없이 그냥 카톡을 읽고 인스타그램을 봤다. 그러는 동안 십 분의 시간이 즐겁게 지나갔다.


갈아타는 시간이 애매해서 회사까지 걸어가야 했을 때는 이 좋은 날씨를 더 잘 즐길 수 있는 우주의 배려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일에 매몰되지 않고 선선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을 즐기면서 십오 분 동안 산책할 수 있는 여유를 이 우주가 내게 선물한 것이라고 말이다. 이 생각을 하면서 걷자 기분이 좋아졌다. 약간 덜 마른 머리카락에 스치는 바람도, 너무 쨍쨍하지 않아서 부드럽게 피부에 내려앉는 햇살도, 아침의 온도와 약간 웅성거리는 듯한 분위기도 모두 즐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선물도 받았다. 길가에 피어 있는 개나리를 본 것이다! 그 개나리를 보고 또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이걸 보려고 내가 걸어왔네!"라고 말이다. 이 예쁜 개나리를 내게 보여 주려는 우주의 원대한 계획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기분 좋게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규모가 큰 일들은 이런 식으로 나를 '속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사소한 일들일 경우에는 가능하다. 이런 규모의 일에서는 그냥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정을 그대로 믿고 따라갈 수 있다. 진심으로 이 의식적인 사고를 믿을 수 있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나를 '속일' 수 있다. 그래서 일상적이고 작은 불운일수록 이렇게 우스울 정도로 순진하고 낙천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애초에 이런 사소한 일이 아니면 그럴 수도 없기도 하고.


나는 오늘 아침부터 소소하게 운이 나빴지만, 머리를 비우고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늘은 괜찮은 하루였다. 손톱도 깎고 여유도 챙기고 꽃도 본 좋은 하루였다.



/

2023년 3월 24일,

소파에 앉아서 TV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csk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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