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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r 26. 2023

[D-281] 미지에 대한 갈망과 두려움

85번째 글

여행을 가기 전에는 언제나 설렌다. 출발하기 전부터 들뜬 마음을 안고 여행을 기다리게 된다. 여행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기대된다. 어떤 장소, 어떤 분위기, 어떤 사건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어서 알아내고 싶다.


그런데 여행이 이렇게 설레는 이유는 바로 이 점 때문이다. 무엇이 나를 기다릴지 모른다는 점. 여행은 기본적으로 일상에서 벗어나서 낯선 곳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그래서 내게 익숙한 공간이 아닌 다른 장소, 내게 익숙한 주변이 아닌 다른 분위기, 내게 익숙한 일들이 아닌 다른 사건들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이 여행을 마법처럼 설레는 경험으로 만든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예상할 수는 있지만, 정말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도착해서 직접 겪어 보기 전까지는 모르기 때문에 더욱 두근거리면서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이 '알지 못하는 것을 기다리는' 감각이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보니 이걸 여행의 묘미라고 설명한다는 것이 참 재미있는 것 같다. 인류는 지난 수천, 수만 년간 '알지 못하는' 것들을 두려워해 왔기 때문이다. 미지를 두려워하며 우리에게 안전한 공간, 안전한 분위기, 안전한 일상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인류 역사 내내 노력했는데, 자발적으로 미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먹을 것이나 더 좋은 보금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모르는 것들을 알고 싶어서 낯선 곳을 찾아간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런 인간의 호기심이나 탐험심이 결과적으로 인류의 생존에 도움이 되기는 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신기하다. 우리가 미지를 두려워하면서도 갈망한다는 점이.


또 이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뿐만 아니라 우리의 하루하루가 모두 '알지 못하는 것을 기다리는' 감각으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 우리는 미래를 보지 못한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고사하고 지금 당장 1초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조차 알 수 없다. 우리는 다가올 것들에 대해서 무지하다. 경험을 통해 조금씩 알아 갈 수는 있겠지만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이 점이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우리를 움츠러들게 만들고, 긴장하게 만들고, 겁을 먹게 만든다. 그리고 동시에 이 점이 우리를 설레게 만든다. 우리를 두근거리게 만들고, 들뜨게 만들고, 신나게 만든다.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우리의 매일을 여행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인생이란 두려움과 기대를 동시에 안고 기다리는 여행이다. 이 여행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행이 마침내 끝날 때, 즐거운 여행이었노라고 회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

2023년 3월 26일,

공항 탑승구 앞에 앉아서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Tobias Rehbei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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