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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nie Aug 20. 2021

20대에 한번 망했던 이야기_1

내가 20대에 벌였던 작은 일들.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퇴사를 했지만, 현실은 작은 중소기업들을 전전하면서 돈을 버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 현실이 나빴다기보다 무언가를 하려면 돈이 필요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재료를 사거나, 내 시간을 보내기 위한 자금을 모을 수 있다는 것. 궁금했던 강의가 있으면 찾아 들었다.


회사원의 삶을 살면서도 꾸준히 그림을 그려 블로그와 sns에 올렸고 작은 일거리를 받기도 했다. 이때에는 꿈이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전시

인지도도 없었고, 그렇다 할 결과물이 없어 내 돈을 써서 전시를 진행하게 됐다. 참여비용이 비교적 저렴한 그룹전, 대관료가 없는 공간에서의 전시 등 기회를 찾아다녔다. 예술가를 위한 공간으로 운영하던 수많은 전시공간들은 지금 생각해 보니 그들의 수입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싶다. 홍보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1~2주에 한 번씩 바뀌는 작가들에게 대관료를 받았으니 말이다.


그중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기회는 있었다. 홍대에 있는 '카페 디토'라는 곳에서 개인전을 하게 되었는데, 사장님 남매분들이 정말 좋은 분이셨다. 대관료 역시 약속을 위한 수단으로 소액을 받으셨고, 아트상품을 팔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즐거운 마음으로 전시를 준비할 수 있었다.



나를 알리기 위해 돈을 많이 썼고, 큰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후회는 없다. 그저 백팩과 캐리어 하나 끌고 어디든 갈 수 있음에 행복했다. 




그림이 쌓여갈수록 내 그림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도 조금씩 늘어났다. 주기적으로 sns에 글을 올린 것도 꽤 도움이 되었다. 기록이 쌓일 때마다 문의도 들어오고, 좋은 기회로 원 데이 클래스를 열어보기도 했다. 



강의

난생처음 강의를 진행하면서 커리큘럼을 만들고, 나를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실망을 드리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어린 나이라고 무시당하거나 전공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밀려나고 싶지도 않았다. 강의는 내가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일이었다. 시간을 많이 쏟아야 했고, 단 한 명의 수강생분들도 놓칠 수 없었다. 


부천에서 서울을 오가며 공간을 대여해 수업하는 것으로 시작하게 된 강의가 블로그에 글을 올리니 각지에서 찾는 분들이 늘었다. 특히, 전주는 외갓집이 있는 곳이기도 해서 친근한 지역이었다. 외갓집에 간다는 소식에 몇몇 분들의 수업 요청이 있었고, 그 기회를 잡았다. 그렇게 여행하듯 일하는 삶을 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당시에는 겨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고 싶었기에 강의를 하면서도 내 그림을 팔 수 있는 프리마켓에도 나가기 시작했다.



프리마켓

다양한 수공예품을 판매할 수 있는 프리마켓. 가장 큰 장점은 고객들이 내 상품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소량의 참가비를 받고 진행되는 곳이 많았고, '창작자'로 참가하는 것이 너무 재밌어서 여러 장소들을 찾아다녔다.


굉장히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는 날들이었다. 재미있는 경험이라는 가장 큰 장점을 제쳐두고 이야기를 해보자면.


첫 번째로는 프리마켓 시장에서 '그림'상품은 별로 인기가 없다. 엽서, 포스터 등의 제품일수록, 유명하지 않은 캐릭터 상품은 더더욱이. 가는 길은 설레다가 돌아오는 길은 허무했던 날들도 많다. 아트상품보다는 먹을 것과 실용적으로 쓰일 수 있는 제품, 액세서리류가 인기가 많았다.


두 번째로는 판매를 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좋은 작품을 가져다 둔다고 해서 잘 팔리기보다는 판매자의 태도와 분위기가 판매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어떤 때는 내가 3만 원을 벌 동안 옆 가게 친구는 30만 원이 넘는 매출을 찍는 걸 보았다. 그 친구의 판매 태도는 굉장히 좋았고, 나도 그 물건을 샀다. 


적자만 남았지만, 이때의 경험들은 실패하지 않는 방법을 하나 더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내 아트상품을 전문적으로 팔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일을 벌일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이메일 slonie@naver.com

인스타그램 @workroom921 / @by_slo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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