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lonie Aug 17. 2021

이럴 거면 퇴사하고 말지.

어릴 때 장래희망 칸에는 항상 '화가'라는 단어가 적혀있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가 아는 직업이 다양해지면서 '만화가'라던가,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형태로 단어는 바뀌었지만 맥락은 비슷했다.



그럴 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말들이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힘든 삶을 사는 건 좀 그렇지 않아?"라던가.

"그림을 그리는 건 정말 돈이 안돼."라는 말들.

물론 대부분 나보다 15살 이상 많은 어른들의 이야기였다.

내가 만화책을 따라 그리면서 시간을 보낼 때도 우리 엄마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하셨고,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택했다.






중학생 때부터 포토샵을 사용해왔고, 예쁜 것에도 관심이 많아 이 직업을 선택한 데에 후회는 없었다. 교수님 추천으로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고(21살),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과 소속감에 매일이 감사했다.

문제는 반복되는 야근과 수습 기간의 연장, 불합리한 현실에서부터 시작됐다. 그 시절의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을까? 지금이야 근로환경이 좋아져서 주 5일 근무에 연차도 있고, 계약서도 작성하는 것이 기본이다. 당시에는 밤낮 구분이 없고 주 6일제에 일이 많으면 일요일에도 출근하는 날들이 잦았다. 당시에 내 월급은 일당 4만 원이었다.


첫 회사 사장님은 정말 나쁜 사람이었는데, 수습 기간을 채워놓고 수습직원 전부를 잘랐다. (전 직원 17명 중 6명이 수습직원) 그러다 일을 제대로 할 사람이 없어서 나를 다시 부르는 해프닝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약 1년 4개월간 첫 회사 생활을 지속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최저임금으로 회사 사무실 바닥에서 자는 일이 허다했고, 상사들의 잡일을 도맡아 하면서 희망이 사라진 것 같았다. 연봉협상이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이때부터 나의 삶을 살기로 다짐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남들처럼 여행도 다니고, 나를 사랑하기로.

쭈뼛쭈뼛 사장실을 찾아가 퇴사 의사를 밝혔다.






이메일 slonie@naver.com

인스타그램 @workroom921 / @by_sloni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