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자체는 긍정적으로, 개소리에는 단호하게!’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 작가는 여행을 하다 우여곡절을 겪었고 여행에 차질이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였다. 그 결과 우울할 줄 알았던 선택이 새로운 긍정적인 경험으로 이끌었다. 작가의 선택이 대단했다. 먼 타지에서 고생 없는 포근한 선택을 할 만도 한대 자신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을 했다. 다른 사람의 자기만 생각한 호의를 위장한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한 것이다.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그를 따라가는 선택을 할 수도 있을 테지만 작가는 스스로에게 맞는 가치관을 선택했다. 몸이 힘들더라도. 말은 쉽지만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또 사람마다 퍼스널 스페이스에 대한 감각이 달라서,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훅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관계를 이어가려면 나름의 대처법이 필요하다.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 사람마다 적당한 물리적 거리와 마음의 거리가 있다. 가끔은 예상치 못하게 그 선을 들어오려는 사람이 있다. 악의가 있든 없든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을 지키는 대응방법을 두어야 한다. 섣불리 대답하지 않거나 딴청 부리거나 역질문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단지 듣기만 하는 방법도 있다.
일상에서도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행동은 부적절했어요”, “불편하네요”처럼 경고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면 사람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 작가는 노쇼를 이야기하며 한 사람의 대응이 사회전반적으로 잘못된 문화가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예의가 없는 사람에게 잘못을 지적해 주는 것도 그 한 사람의 행동을 바꾸고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꼬리 물어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처럼 서로 자존감을 낮추는 데 바쁘고 권위적인 곳일수록 더더욱 이런 힙합 정신이 필요하다. 남들이 하는 평가를 그대로 믿지 않고, 권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를 리스펙(respect)하는 것. 그렇게 되면 누군가 “가만히 있으라”라고 할 때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알겠으나 공감하기 어렵다. 난 겸손이 미덕이라 생각한다. 고등래퍼에서 김하온과 이영지를 기억하는 것도 겸손함과 실력을 동시에 가졌기 때문이다. 또 페이커를 좋아하는 프로게이머로 삼는 것도 겸손함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잘난 체가 아닌 겸손함을 가지면서 자신감을 갖는 건 중요하고 자신이 하는 일을 리스펙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잘난 체하거나 거만하다거나 자신의 믿음을 과도하게 신봉하는 것도 잘못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 스스로에게 하는 적당한 자화자찬은 찬성이다.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으며 메타인지를 가지고 적당히 스스로를 칭찬할 줄은 알아야 한다.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도 듣고 싶고 거절도 잘하고 싶다면, 그건 욕심일 뿐이다. 둘 중 하나는 어느 정도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다. 나에게 상대의 부탁을 거절할 자유가 있듯이, 거절당한 상대가 나에게 실망할 자유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면 그 모든 사람에게 휘둘리게 된다.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수도 없다. 거절할 수 있어야 건강한 관계가 된다.
정색하면서 거부하기가 힘들더라도 최소한 웃지는 말아야 한다. 많은 여성은 성희롱을 당했을 때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해 웃어버리곤 한다. 거절할 때조차도 너무 단호하게 들릴까 봐 머쓱하게 웃는다.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 상황이 불편한 게 싫어 실실 웃는 것도 버릇이 된다. 상황이 불편하면 불편한 상태를 티 내야 한다. 내가 굳이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애쓸 필요 없다. 애쓰지 말자.
성희롱 문제는 성립 요건 자체가 피해자 중심주의로, 피해자가 어떻게 느꼈느냐를 중시한다. 충격을 받았을 때 애써 아무 일도 아니었다고 생각하지 말자. 참고 피해버리면 문제가 반복되거나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핵심은 자신의 감정을 믿는 것, 그리고 단호해지는 것이다.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 성희롱 생각보다 먼 문제 일 것 같은데 나도 회식 중 허벅지 만짐을 당한 적이 있다. 술 취한 아빠뻘되는 과장님이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스치면서 말을 하는데 나는 순간 얼음이 되었다. 어이가 없어서 낯선 손이 올라간 내 허벅지를 보자 그제야 손을 치웠다. 난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햇병아리고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고 내가 “허벅지 왜 만지셨어요? 만지지 마세요!”라고 단호하게 말했어야 했지만 회식자리가 엉망이 될 것 같으니 조용히 있었다. 하지만 한번 더 신체접촉이 있다면 그냥 집에 갈 생각이었긴 했다. 이런 일을 당하면 자신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자. 예민해서 그런 게 아니다. 가해자가 잘못한 거다. 피하지 말고 문제를 맞닥뜨리고 잘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는 계속 연이어 일어날 것이다. 나 자신을 지속적인 피해자로 만들지 말자.
토마스 만은 《토니오 크뢰거》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을 간단히 한마디로 규정해 버리는 것을 가리켜 “당신은 (그런 식으로) 처리 돼버렸군요!”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누가 나를 ‘처리’해버리면 화를 낼 거면서 남들은 쉽게 ‘처리’해버린다.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 나의 가치를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나는 상대의 가치를 찾기 위해 애쓰는가? 무슨 가방을 메었는지 옷차림이 어떠한지 인스타그램 팔로우수는 몇 명인지, 그 사람의 생각이 어떠한지 궁금해하지 않고 손쉽게 상대를 처리해버리지 않는가? 내 목소리를 낮추고 상대의 말과 생각을 잘 들여다보자.
그처럼 사람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은, 적은 경험으로 일부의 모습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편견에 사로잡혀서인 것 같다. 다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 나이가 들면서 제일 경계해야 하는 것은 내 세상에 갇힌 이유로 세상 전부가 그렇다고 결론을 내 버리는 것 아닌가. 과학도 끊임없이 다른 결론을 내기도 하는데 고작 나란 지구의 먼지와도 같은 인간이 세상만사 다 깨달은 것처럼 헛소리 하는 걸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고착과 편견, 가장 경계해야 한다.
프레즌스(presence)’를 보통 ‘존재감’으로 해석하지만, 그는 ‘자신의 진정한 생각과 느낌, 가치와 잠재력을 최고로 끌어낼 수 있도록 조정된 심리 상태’라고 더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남들이 보기에 자신감 있는 것처럼 행동하다 보면 남들뿐 아니라 자기 스스로도 어느 순간 그렇게 믿게 된다는 것이다.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 하버드대학교를 나온 사람도 자신의 가치 없음이 들통날까 봐 걱정한다니 정말 신기하다. 이처럼 나의 세계에서는 대단하다 느낀 사람들도 자기만의 고충 하나씩은 가지고 있구나 싶다. 프레즌스처럼 나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건 내 하루 루틴, 건강한 식사, 정갈한 상차림, 곧은 자세, 비속어 쓰지 않는 말투, 상냥한 태도, 단호한 말투 등이 아닐까 싶다. 나 자신을 이루어 내는 것은 여러 요소가 합해진 나다. 그건 일상 속에서 내가 바꾸고 만들어 내는 것이다.
조직에서 우리가 섭섭함과 분노를 느끼는 이유는 대개 단순히 일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내가 애쓴 것을 알아봐 주지 않는 서운함에서 나온다. 반면 내가 고생한 것을 알아봐 주고 선배나 후배가 고맙다고 말해주면 힘들어도 계속할 힘을 낼 수 있다.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 조직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그러하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때 하교 후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나에게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 빤히 쳐다본다. 화장실에 들렀지만 나는 당최 모르겠다. 엄마가 입을 연다. “화장실 깨끗하지 않니?” 아 화장실 청소했구나 나는 그냥 “응 깨끗하네” 대답한다. 엄마는 아주 약간은 만족스러운 눈치다. 이제 살림을 해보니 화장실 청소만큼 티 안나는 곳이 없다. 독한 락스 냄새로 허리를 숙이며 더러운 곳은 벅벅 문지르고 손도 잘 닿지 않는 구석구석 청소 하는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는데 화장실 쓰는 사람이 아무 말 없으면 정말 속상하다. 나도 남편에게 묻는다. “화장실 깨끗하지 않니?” 남편의 대답에 따라 그날 저녁 메뉴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