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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자까 Oct 09. 2021

퇴사 1일차

빌딩 산에서 뜨는 해를 맞이하다


06:20 기상

06:58 지하철

07:10 기차 탑승

08:00 직원 차 탑승

08:16 회사도착


1년 9개월

환승 3번

매일 왕복 116.4km

지구 둘레가 4만km라고 하니

한 달 20일 근무했다고 쳐도 27,936km


 출퇴근 시간으로 지구 한 바퀴돌았다고 하고 싶은데 아쉽지만 실상 그 길이는 되지 않는다. 단지 나는 출퇴근을 열심히 했고 내 아까운 시간을 여기에 쏟아부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했을 뿐이다.

 취업준비를 하고 1년 6개월 만에 들어간 회사에서 1년 9개월 만에 나왔다니 너는 정말 대책이 없구나 싶겠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를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10월 이 선선한 날씨에 나는 많은 일을 겪었다. 2020년에도 2019년도 2018년에도... 굳이 기억을 꺼내고 싶지 않은 일도 있지만 나의 결혼식이라는 큰 일도 있다. 좋지 않은 일만 있다면 10월은 거지같은 달이야! 라고 넘겼을 터인데 이제 좋은 날들도 가득하니 망각이라는 인간의 좋은 특기로 나쁜 건 잊어버리고 좋은 것만 쌓아가기로 다짐하는 달로 바꼈다. 나의 퇴사도 좋은 날로 기억하고 싶다.


 이 나이에 취업은 처음이라, 또 퇴사도 처음이라 이렇게 하는 게 맞는가 싶다. 아르바이트의 마지막은 "안녕히 계세요~~" 로 동료와 뭔가 평소와는 다른 긴 여운을 남기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나름 힘들게 취직했고 나에게 퇴사가 중요한 의미인데 "안녕히 계세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라고 말만 하기 그래서 쿠키를 사서 나눠주었다. 친구들은 퇴사하는 마당에 돈아깝게 뭘 주냐해서 출근길에 들고가다가 도로 집에 놓은 적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처음 마음 그대로를 따라가라고 했기에 다시 들고간 쿠키를 나눠주었다.


퇴사 후 뭐가 달라졌나 찬찬히 들여다 보자면

첫번째 굉장히 부지런하다. 직장인의 부지런함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9 to 6 의 시간이 오롯이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니!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두번째 돈이 없다. 노동의 대가를 포기했으니 이제 노동 없이 일해야 한다. 여기서 일이라고 하는 것은 대가 없이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세번째 불안하다. 코로나 시국에 취업문이 낙타 바늘 구멍 통과하기 만큼 어렵다는 이 시국에 퇴사를 했으니 굉장히 불안하다. 퇴사 후 내가 누리질 못할 손해들과 아까운 것들이 자꾸 생각날때면 후회가 찾아온다.

네번째 성장한다. 사실 이건 증명해보일 수 없지만 퇴사 결정 후 며칠간 굉장히 괴로웠다. 불안과 걱정이 나를 집어삼켰고 이를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나는 성장했다고 단언한다. 결과를 좋아하는 한국이라 내 퇴사의 결과는 후에 만나 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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