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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자까 Oct 08. 2021

퇴사자의 자유

그런데 불안한 자유

광명 속으로 들어가는 오리


 퇴사를 결심하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따박따박 제 날짜에 들어오는 월급의 맛을 본 월급쟁이의 삶은 쉽사리 포기하기 쉽지 않았다. 1년만 다니겠다는 직장을 9개월 더 다니고 나서야 이 직장은 나를 갉아 먹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요즘 취업시장에서 고졸전형으로 들어온 직원보다 낮은 직급을 가진 나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나이가 어리더라도 실력이 굉장하여 들어온 것이라 자위를 하다가도 업무프로세스를 다 알아버린 나는 내 월급이 너무 작고 직급체계가 닫혀있는 무기계약직 신세라 빠른 탈출이 답이라 생각했다.

 퇴사를 결심하고 며칠은 장시간 출퇴근 시간을 버틴 나를 대견해하면서 어떤 역경이 닥쳐도 다 해결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살았다. 그러다가도 나머지 며칠은 구직사이트에 들어가보며 나의 위치를 가늠해보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생각에 자괴감과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안정적인 직장이었던 회사를 상기시켜보며 '좋은 직장이었는데 내가 헛된 생각을 했나, 미친 짓을 한건가!' 혼잣말을 되새겼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유명인들이 연봉7천의 직장을 그만두고 배우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와 성공한 이야기, S전자를 다니다가 배우의 길을 선택한 이야기 등 대단하다고 느꼈지만 정말 정말 미쳤다 할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성공의 빛 속에 있지만 그림자에 있는 사람들도 있지 않겠는가. 그게 내가 되면 어쩌지, 라는 극도의 불안과 걱정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2시간을 눈물을 흩뿌리며 걷다보니 지독한 걱정에서 나오게 되었다. 집에 돌아온 후 나의 경제적 지주가 되어 졸지에 가장이 된 남편과 진지한 이야기를 했다. '나를 믿느냐, 나를 믿는 사람의 태도가 그거야?' 라며 나의 불안과 걱정을 남편에게 쏘아부었다. 잘자다가 새벽 3시 나의 부름에 일어나 작은 눈으로 나를 믿는다고 해명하는 남편에게 미안했다. 나의 낮은 자존감을 남편을 채찍질해서 올리려는 부당한 행동이었다. 빈 생수병을 들고 서로가 잘못한 걸 하나씩 말하기로 했다. 남편은 자신이 잘못한건 없다고 하여 나에게 생수병을 건네주었다. 내가 잘못한 게 줄줄 끊임없이 나왔고 알았으니 잠을 자자고 한다.  


 내 안에 있는 걸 쏟아부으니 다음 날은 한결 가볍다. 감정에도 무게가 있다면 불안과 걱정의 무게가 제일 키로수 많이 나갈 것이다. 서울은 재미있는게 왜이리 많고 돈 나갈 데는 왜이리 많은지. 우리집 전세계약은? 연장할수 있을까? 이제 대출받을 곳도 없는데? 어제까지 물음표로 가득차있던 내 머릿속에 자유의 물결로 가득찼다. 남편이 자신의 시간을 팔아가며 벌어준 나의 시간 어떻게 보내야할지 계획하는 시간이 아름다웠다. 다시 나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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