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자까 Oct 12. 2021

대졸의 삶 - '대졸프레임'

라떼는 멍때리지 말라고 했는데 요즈음 멍때리라고 해.


 라떼는 대졸자도 취직이 쉽지 않다. 대졸자가 국민 2명 중 1명이라는 통계수치가 나오는 시대, 나는 현재 여기에 있다.

 대학교를 어정쩡한 성적으로 졸업했다면 쫓겨나듯이 졸업장을 들고 대학교 밖으로 나온다. 졸업자 대부분이 본인의 전공과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데 보통 공무원을 준비하거나 공무원 준비가 아쉽다 싶으면 대졸에 걸맞는 전문자격증 시험을 도전해본다. 요즘 다 들어가는 대학교에 무슨 훈장을 얹었는지 눈만 높아지고 원하는 결과는 쉽게 얻지 못한다.

 

 해마다 전국 수많은 대학교들은 졸업자들을 배출하지만 취업시장은 흡수할 여력이 없다. 대학생활에서 1년은 순식간에 늙어가는 느낌이 든다면 졸업 후에 1년은 생각보다 아직 젊은 느낌이다. 하지만 시간은 피부로 와닿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쏜살같이 지나가고 동창의 결혼과 출산 소식을 들으면 서서히 시간의 속도가 와닿는다. 그리고 앞자리가 3으로 바뀌는 순간 아차 싶다. 큰일이다.


 나도 졸업한 후 전공과 다른 길을 선택했다. 청개구리병인지 몰라도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부터 들어가고 싶었던 심리학과를 막상 들어가니 평생 이러고 살진 못할 느낌이 들었다. 대학시절 멘토링을 했는데 내가 맡은 친구가 가출을 하고 자정에 담임선생님의 연락을 받으니 내 인생도 내가 책임지기가 힘든데 그 친구 인생을 내가 어떻게 해보겠는가 라는 자괴감에 다른 길을 선택했다.

 졸업한 후 딱히 하고 싶은 건 없었는데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할 것 같은 느낌은 들었다. 돈을 벌면서 뭐라도 해보자 싶어 키즈카페 공고에 지원했다. 그런데 수습기간 3개월 동안 최저시급을 못주겠다는 말이 돌아온다. 근로기준법을 뒤져보았다. 어라, 법에 관한 직업도 괜찮겠는데?

 그렇게 나는 노무사 공부를 시작했다.


 부모님의 지원이 어느정도 있었지만 사람이 양심이 있지 대학 졸업 후에 부모님의 노후자금을 뺏어먹는건 파렴치한 일이란 생각에 아르바이트와 병행을 했다. 한 강사가 수많은 노무사 준비생들을 보면 말한다.

"시험 공부는 깨진 장독대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 물을 쉬엄쉬엄 주면 장독대는 물이 차지 않을 거지만 끊임없이 들이 붓는다면 깨진 장독대라도 물은 다 차게 된다. 일하면서 몇개월 쉬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수험생활은 깨진 장독대에 물을 다 채울 수 없다."

 딱 내 얘기였다. 강사는 어떻게 나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있었는지 무서울 정도였다. 매년 수많은 수험생을 만나보니 수험생활을 실패하는 사람들의 빅데이터를 강사들은 가지고 있었다. 강사의 예견대로 나도 그 빅데이터 속 하나의 수치로 자리잡았다. 돈도 필요하고 공부도 해야하는데 인간극장에 나오는 성실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힌게 문제였던 것 같다. 그렇게 수험생활로 4년 가량을 보냈다.


 그렇게 나는 대학졸업 후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자격증을 따지 못한 수험생활은 어느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노무사수험생으로 끝났고 심리학과 전공을 한 학사학위는 이젠 내용도 기억도 가물가물할 정도에다 처음 본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거 아니야?" 라는 분위기 전환용 멘트로 전락했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왜 나는 직업이 없냐는 자괴감에 휩싸일 때가 많은 대졸자가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이는 먹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는 사람들을 위해 '공'자의 길이 열려있다. 공무원, 공기업 등 공공기관들 말이다. 그렇게 노무사 수험생에서 공기업 수험생으로 나의 길은 전환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자의 자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