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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자까 Oct 14. 2021

자전거타기

무기력증에서 벗어나기

퇴근 후 마곡나루역에서 1시간을 걸려 달려온 남편 끝난줄 알았지? 아직 더 남았어...


 침대에서 나오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다. 연약한 눈꺼풀은 나풀거려 나의 통제가 불가능하다. 몸에 힘을 주려고 해도 이미 모두 빠져버린 힘을 돌이킬 수 없다. 그러면 아침에 부지런한 기상은 불가능하고 배가 고플 쯤에야 이 몸뚱이가 살아남으려 몸을 강제로 일으킨다.


 무기력증, 원인을 찾긴 어렵다. 퇴사의 충격일까, 스스로 사직원을 제출해놓고. 호르몬문제?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은 걸 무기력증으로 포장하는건가? 이 생각이 제일 무섭다. 직장을 다닐 때는 내가 겪는 고통, 아픔을 다 회사탓으로 돌릴 수 있지만 백수일 땐 아픈 핑계가 모두 '하기 싫어서' 탓이 된다. 단순히 하기 싫은 문제와는 다른 무기력증의 특성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가끔 "하기싫어서 아픈거 아니야?" 라는 말을 들을 땐 아픈 구석이 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아니다. 무기력증을 이겨보려고 아등바등 댄다. 눈에 보이는 집안일은 척척해내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려 발버둥친다. 이런 일이 자주 있기에 해결방법은 있다. 하기 싫은 공부는 하지 않는 것, 걷기, 뛰기, 자전거타기. 자전거 타는 건 퇴근하는 남편을 마중나가기 아주 좋은 방법이기에 퇴근 시간에 맞춰 달린다.


 우리 만남의 장소는 잠수교다. 해가 짧아져서 요즘은 한강의 수많은 다리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서울에서 제일 멋있는게 야경이 아닐까, 사람 없는 도시는 불피우기도 아까운지 아주 캄캄하다. 한강 위 수많은 다리위에서 발하는 조명과, 빌딩 속 전광판, 가로등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야근이 이뤄낸 등대까지. 정신없이 페달을 밟으며 다리 하나씩 퀘스트 깨듯이 달려나간다. 한없이 달릴때면 바람이 등에서 거칠게 밀며 달리라고 채찍질 하듯 자전거가 붕 뜨는 듯한 느낌이 들때도 있다. 그럴땐 더 달릴 수 있겠는걸, 착각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걸 안다. 풍경을 나지막히 바라보며 자전거로 쉼을 찾는 사람들을 추월하며 나는 경쟁하듯이 페달을 무진장 밟아댔다.


 잠수교에서 남편을 만나 빛을 내는 반포대교와 반사된 빛과 일렁이는 한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허벅지는 뻐근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어디든 주저 앉고 싶은 지금 물 한모금과 빛 멍이 그렇게 달 수 없다.

"나 사람들 엄청 추월하면서 왔어!"

"나도, 근데 인생에서는 추월당하고 있는데..."

 남편은 가끔 김빠지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이럴 땐 주둥이를 손으로 몇 대 때려줘야 한다. 그런데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오늘과 같이 무기력증 속에 있을 때는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다. 나와 비슷하게 살아갔던 친구들이 승승장구 할 때면 질투보다는 대단하고 멋있고 내 친구라서 자랑스럽다. 그런데 나는 후진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같은 길에서는 추월이라는 말을 쓸 수 있지만 서로의 인생길은 다르지 않은가? 추월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생이 추월당한다는 말은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해서 이뤘던 현재를 부정하는 말과 같다. 내 선택들이 모두 틀렸다는 말인가. 동조하고 싶지 않다.


 자조적인 말을 하고 황급히 일어섰다. 힘들다, 지하철 타고 집에 갈까 싶었지만 자조적인 말을 해서 그런지 더 이 상황을 이겨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잠수교를 지나는 언덕을 멈추지 않고 달린다. 나는 저 언덕을 꼭 멈추지 않고 내 힘으로 달려나갈 것이라는 강인한 심정으로 귀여운 언덕을 지난다. 나에게는 엄청 큰 산이었는데 실제로 보면 귀여운 언덕이다. 남편과 나는 함께 달렸다. 한강보면서 천천히 달리자라는 말과는 다르게 우리는 자전거길 위에서 엄청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내가 너를 따라잡으리, 남편은 더 세차게 페달을 밟는다. 그래도 포기 하지 않고 달린다. 마침내 남편을 추월하고 내가 선두에 섰다. 자전거를 타다보면 너무 힘들어서 자전거를 한강물에 던져버리고 길 옆에 피어나는 풀뭉치들에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다. 다행히 내 몸뚱이 건사하게 집에 잘 데려다 준다. 남편과 한껏 껴안는다. 우리 포기하지 않고 해냈어!


 또 마중나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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