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바쁘다는 핑계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은은한 노래를 틀고 요가 동작을 하나둘씩 하며 잡생각 없이 몸을 움직이며 땀을 배출하는 그런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녹슬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지 못한다. 그런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녹슬고 난 후에 깨달아 뒤늦게 허둥지둥 몸을 움직이며 밀린 요가를 하기도 하고 일기를 쓰기도 한다.
허둥지둥 살다가 드디어 다시 나의 생각으로 돌아왔다. 주변 사람들에게 소홀히 했던 나의 감정들을 떠올렸고 상처 받을 타인에 대해서 상처 받은 나에 대해서도 생각하기도 한다. 특히 남편에게는 칭찬을 많이 하지 못했다. 사랑한다라는 말은 숨소리같이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칭찬은 아직 낯설다. 그런데 칭찬뿐만이 아닌 것 같다.
갱림여사님(=필자의 엄마)과의 전화통화는 가끔 의무적이다. 하루 한 번의 통화는 필수고 이틀이 넘어가면 수화기 건너편에서 속상한 반응이 들린다.
- 엄마 없이 살지 그래.
10번 못하다가 1번 잘하면 칭찬받는 우리 언니와 달리 10번 잘해도 1번 잘못하면 욕을 사발로 들이켜야 하는 친구 같은 둘째 딸의 숙명이랄까.
2차 백신 접종을 맞고 며칠 앓아눕다가 갱림여사님께 전화를 했다.
- 얼마나 아프니? 1차 때도 그렇게 아팠나?
- 1차 때보다 더 고생이야. 아파 죽겠어~
쉬라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에도 아팠다. 또 전화를 걸었다.
- 엄마도 귀가 이상해. 귀가 아직도 아프네.
아니, 엄마 내가 아프다니까. 엄마도 아프겠지만 나는 지금 내가 아파서 전화를 했다고. 조금은 억울한 심정으로 전화를 끊는다.
오늘도 갱림여사님의 절묘한 '말의 전환'에 당했다. 아픔을 위로받고 싶어서 내가 전화를 걸었는데 나에게 위로를 주는 것보다 위로를 받으려는 말의 전환, 엄마의 주특기다.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표현이 쉬울 듯싶다. 어렸을 때 보이지 않았던 엄마의 평범한 말 습관들을 어른이 되고 나서 곱씹어보니 잘못된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닫는다.
상대가 아프다고 말을 하면 전적으로 그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은 많이 아프지? 고생이 많다. 빨리 나아야 할 텐데. 이런 말이다. 어? 나도 아파! 어깨가 쑤시고 허리가 아프고 두통이 있어. 가 아니라.
슬프게도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이러는 것 같다. 모르면 배우고 틀린 건 고치는 게 당연하지만 어릴 적부터 쉽게 물든 말 습관이라는 건 쉽게 바꾸기가 어렵다. 그래서 늘 실수를 뒤늦게 깨닫고 미안하다는 말로 말 습관의 치부를 가리고자 한다. 가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변하는 게 중요한데 말이다.
-엄마는 꽤 괜찮은 엄마지?
엄마가 가끔 이런 말을 할 땐 그래 엄마만큼 좋은 엄마가 어딨어~라며 칭찬한다. 근데 곱씹어보면 내가 만난 팀장님들 중에 '나 정도면 꽤 괜찮은 팀장 아니냐?'라고 말한 사람이 제일 별로였다.(^^) 팀장은 내가 바꿀 수 없지만 엄마는 나와 같은 길에서 계속 성장할 수 있으니까 또 엄마라고 다 큰 건 아니기에 오늘만 미워하고 더 좋은 엄마가 돼주라고 재촉할 생각이다.
물론 나도 오늘은 더 많이 칭찬하고 이해해줘야 하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