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일지03. 완벽한 선택은 없다

첫 제품의 성공은 일단 만들어내는 것

by 만들레

고통 속 찾아온 파우치 테스트 기간


샘플을 첫 제작하고 그 후 몇 주간 알 수 없는 원인의 장염으로 응급실에 실려가고 링겔을 4번 맞았다. 한참 불붙은 파우치 제작 초기에 날벼락같이 찾아온 장염은 찬물을 끼얹었다. 모든 게 스탑 되고 왜 하필 이때냐며 툴툴댈 생각할 여유도 없을 만큼 아팠다. 황금 같은 연차를 3일이나 날린 것이 직장인의 고통을 증명한다..


그 와중에 생리기간이 겹쳐 끔찍한 생리통도 찾아왔다. 생리통약을 하루에 10개 먹으며 버티면서도 파우치를 테스트했다. 난 생리대나 탐폰이 편하게 들어가는 크기에, 직장인에게 잘 어울리는 디자인, 화장실에서 생리용품을 갈 때 손이 편안한 파우치를 만들고 싶었다. 직접 이 과정을 온전히 느껴볼 수 있는, 한 달에 한 번 유일하게 찾아온 파우치 테스트 기간을 놓칠 수 없다.


상상해 오던 설레고 상쾌한 테스트는 아니었지만 눅눅하고 짜증스러운 고통 속이었지만 웃음이 났다. 내가 머릿속에서만 생각하고 있던 파우치를 직접 사용해 보니 아무도 안 쓰더라도 나는 쓰겠구나 싶은 확신이 생겼다.


제품 제작은 선택의 연속

그 후로 샘플은 6개 정도 더 제작되었다. 샘플을 제작할수록 선택의 범위가 좁혀져 나가는 과정일 줄 알았는데 선택지가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지퍼만 해도 지퍼 크기, 재질, 위치부터, 헤드까지 선택해야 하는 항목이 곁가지로 뻗어나간다. 이 모든 걸 베어내고 단 하나의 가지만 남겨두는 게 꽤나 고행일 예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동시에 만족하는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가지를 찾기란 어렵다.


방수와 오염에 강하면서도 동시에 피부에 닿을 파우치기에 촉감이 부드러우면서 색상이 다양한 원단, 그런 완벽한 원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설사 존재한다 하더라도 매일같이 직장에 가는 내가 찾기엔 역부족이다.


최고의 선택을 하려다간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 분명 제품으로 못 나올 것이 뻔했다.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하는 차례고 원단 사장님께 눈 딱 감고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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