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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 늘보 Oct 06. 2020

집과 차를 팔고 건조기를 사라

미니멀 라이프는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요즘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이다. 작년 여름 제주에서 5개월을 살 작정으로 이사를 왔던 나는 처음에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미니멀 라이프가 주는 가벼운 삶의 즐거움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가진 것을 덜어내니 근심도 덜어졌다. 자유로워졌다. 그 가벼운 삶의 자유로움에 매료되고 나니 미국에서 이사 올 때 가지고 왔던 캐리어 단 두 개만큼의 짐에서 조차 덜어 낼 것이 많았다. 살면서 꼭 필요한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니멀 라이프라고 무조건 덜어내기만 하는 건 아니다. 삶에 자유로움과 행복을 더해 주는 물건이나 경험은 더한다. 없으면 자유로운 것들이 있는가 하면 없으면 불편한 것들도 있다. 미니멀 라이프는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무엇이 나에게 행복을 주는지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당연히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 중에서 버리고 행복해진 것이 많았다는 것이다. 반면에 보통은 필수라고 여기지 않는 것 중에서 엄청난 행복을 주는 것들도 있었다.


나의 경우에 버려야 할 것 첫 번째가 집이다. 이제껏 내 집이 꼭 있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소유의 집이 없으니 엄청난 해방감이 있다. 지금 사는 곳은 에어비엔비를 장기 숙소로 쓰고 있는데 원한다면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다. 당장 내일이라도 가방 두 개면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은 삶을 가볍게 한다. 영혼까지 자유로워지는 느낌이다.


미국에 있을 때는 마당이 넓은 커다란 2 집에서 살았다. 집의 크기만큼이나 집을 수리하고 관리하고 청소하는 데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들어갔다. 집을 청소해 주시는 아주머니께서는 한나절에  청소하기가 힘들어  주는 아래층을, 다른 주는 위층을 청소하셨다. 단독 주택의 마당이 보기에 좋다는  그만큼 정원사나 집주인의 땀나는 노고가 들어갔다는 뜻이다. 여름엔 빠르게 자라는 잔디를 매주 깎아주어야 했고 뒷마당의 커다란 나무는 보기엔 아름답지만 봄에는 꽃이, 가을에는 잎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겨울에는 드라이브웨이 위에 쌓인 눈을 치우느라 여름보다 땀을 많이 흘리기도 했다.


미국에 있는 집들을 다 정리한 지금, 남편은 30평 남짓한 작은 에어비엔비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태풍이 몰아치고 폭우가 쏟아져도 지하실에 물이 들어올까 걱정하는 일 없이 푹 잘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집은 그런 곳이어야 한다. 고치고 치우고 관리해야 할 걱정거리가 아니라 몸 누이고 쉬이고 편안할 수 있는 행복을 주는 공간.


집은 그렇다 쳐도 차는 꼭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리 한국은 대중교통이 잘 발달했다고 해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차가 없으면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제주에 와 보니 차가 없는 편이 훨씬 좋았다. 아이들의 학교와 편리한 마트와 재래시장과 식당과 카페들이 모두 걸어서 10분 거리 내에 위치했으니 차가 있어도 어차피 대부분 걸어 다닐 판이었다. 한국의 대중교통은 세계적 수준인 데다가 값도 싸서 필요할 때마다 매번 택시를 타고 다닌다 해도 차를 소유하는 것보다 저렴했다. 주말에 교외에 놀러 나갈 때는 친환경적인 전기차를 저렴한 가격에 렌트했다. 차가 없으니 주차도, 세차도, 관리도 걱정이 없다. 걸어 다니는 일이 많아지면서 제주의 자연도 훨씬 더 가깝게 즐긴다.


보통 집과 차는 꼭 자가로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없이 살아보니 오히려 집과 차는 소유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한국에서 살든 미국에서 살든 집과 차를 꼭 필요하지 않다면 소유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거꾸로 내 삶이 집과 차에 의해 소유당하게 될 수 도 있다. 집과 차는 소유하지 않아도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반대로 미니멀리스트에게도 없어서 불편한 것이 있는데 우리의 경우에는 그것이 빨래 건조기였다. 미국에선 집집마다 거의 건조기가 없는 집이 없지만 한국에선 아직 건조기를 사용하지 않는 가정이 많다. 빨래 건조기가 우리에게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는 한국에 와서 없이 지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뽀송뽀송 건조된 빨래를 바로 꺼내어 개어 놓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몰랐다. 건조기가 없어 빨래를 건조대에 하나씩 하나씩 일일이 널고,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고, 장마철에는 바짝 마르지 않아 쉰 냄새가 나는 옷을 입고 나서야 건조기의 소중함을 알았다.


주인아주머니께 부탁해서 건조기를 들여놓은 날, 남편과 나는 아이들과 함께 춤을 췄다. 남편과 아이들은 더 이상 빨래를 널지 않아도 되는 게 좋았다. 나는 계획성 있게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좋았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느라 옷가지가 몇 없기 때문에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불편할 때가 많던 차다.


행복을 주는 소비라는 것은 그런 것 같다. 시간과 공간과 심적 에너지를 돌려주는 것. 불편함을 덜어줌으로써 불행을 덜어 주고 즐거운 경험을 더해줌으로써 행복감을 높여 주는 것. 건조기 덕분에 빨래 건조 시간이 짧아졌고 빨래 건조대가 차지하던 공간이 이제는 생활공간으로 변했다. 빨래를 하는 일이 한결 덜 고민스럽고 덜 불편하고 더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우리처럼 집과 차를 팔고 건조기를 사야지만 행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불행과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 다를 테다. 어떤 이는 자기 소유의 집이 없는 것이 불안해서 큰 심적 스트레스로 다가 올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집과 차를 관리하는 데에서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아마 집과 차를 소유하는 편이 더 행복할 것이다. 빨래를 탁탁 털어서 너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자연 바람에 빳빳하게 마른 수건의 까슬 까슬함이 좋은 사람도 있을 테다. 그런 사람들은 건조기가 그 행복을 앗아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를 아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저 남들이 사기 때문에 집을 사고 차를 산다. 행복해지기 위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소유하기 위해 소비를 한다. 단지 소유하는 것이 목적인 소비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우리의 행복을 갉아먹고 있을 수도 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소비가 과연 무엇인지 살면서 한 번쯤은 고민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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