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는 갈매기가 많지 않다. 고향 부산의 항구에선 갈매기가 빼곡히 하늘을 덮곤 했는데 여기 제주에선 부두 근처에 사는 데도 하루 종일 갈매기를 안 보는 날이 많다. 용담 해안을 따라 4km 정도 거리를 걷는 아침 산책 길에서도 갈매기 그림자 하나 볼 수가 없다.
갈매기를 보려면 한치잡이 배가 나고 드는 서부두 방파제에나 가야 그나마 조금 볼 수 있다. 제주 갈매기는 듬성듬성 퍼져 있는 제주의 마을들을 닮았나 보다. 무리 지어 다니는 모양이 하나 둘, 많아 봤자 대여섯 마리 정도가 어울려 다닌다. 자갈치 시장의 인파만큼이나 빼곡하고 분주하게 날아다니던 부산 갈매기들하고는 사뭇 다르다. 요즘은 유행하는 MBTI 성격유형 검사를 한다면 아마 부산 갈매기들이 외향적-Extrovert (E)이라면 제주 갈매기들은 내향적-Introvert (I) 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제주 갈매기는 우리 부부를 닮았다. MBTI 성격 유형 검사에서 우리는 둘 다 이 이상 더 내향적일 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가장 극단적인 I 점수를 받았다. 나의 직장 동료들은 그 결과를 보고 모두 의아해했다. 직장에서 하는 일이 교사들을 가르치고 워크숍을 리드하고 연설하고 회의를 주재하는 일이 대부분인지라 이 사람들은 내가 외향성을 발휘하는 모습만 보았기 때문이다. 워크숍과 연설과 회의가 끝난 후 사무실에 돌아와 문을 닫고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내 모습은 앞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보통 일반적으로 내향적이다라고 하면 사람들은 수줍고 소극적인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고 외향적인 사람은 활달하고 적극적인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래서 특히 큰 목소리와 열정적인 태도를 가진 남편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외향적인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MBTI에서 말하는 외향성과 내향성은 소극적이냐 적극적이냐가 아니라 어디에서 에너지를 얻는가를 가리킨다. 혼자 있으면서 내면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과 어울리면서 바깥과의 관계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있다. 남편과 나의 경우에는 둘 다 혼자 있는 시간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들이다.
지나치게 많은 외향적 활동은 우리를 지치게 하곤 했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파티에는 가고 싶은 마음이 잘 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가장 가까운 친구 하나 둘 정도 만나서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파티에서 활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화를 주도할 때도 많다. 하지만 그런 파티가 끝나면 보통 혼자 있는 시간을 갖는다. 혼자 있으면 충전이 된다. 여러 사람과 가볍게 어울리기보다는 가까운 사람과 속 깊은 마음을 나눌 때 충만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 우리에게는 지금의 생활이 잘 맞다. 제주에서 이방인 아닌 이방인으로 지내면서 가족끼리만 지내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 시기이지만 어느 일에나 어두운 면이 있으면 밝은 면도 있는 법인가 보다. 코로나 덕분에 아름다운 제주의 한산한 자연을 오롯이 만끽한다. 관광객이 적으니 주말에 빌리는 렌터카도 저렴하다. 즐겨가는 해안가 카페 2층은 오전에 우리 가족뿐인 날이 많다. 딱 마음 놓을 수 있을 만큼의 사람만 온다.
사람은 자기 난 모양대로 살 때 가장 편안하다고 한다. 내향성이 강한 사람이 외향적으로 살려고 하면 그만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나의 경우에는 평생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혹시라도 지치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를 살펴야 했다. 반대로 외향적인 사람들은 요즘 코로나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서 받는 스트레스가 내향적인 사람들 보더 훨씬 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MBTI 성격 유형 테스트의 근간이 되는 이론을 세웠던 칼 융은 이런 성격 유형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선천적인 성향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또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자기 발견의 과정을 통해 좀 더 유연한 성격을 계발시킬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자기 난 모양대로 살 때 가장 편안하지만 또 자기 성찰과 성장의 과정을 통해 어느 모양으로도 적응해서 살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