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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선생 Dec 15. 2020

어차피 우린 모두 친밀한 사이

우린 모두 다 케빈 베이컨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이

인연에도 흐름이 있는 것 같다. 제주에 와서 첫 1년 동안 좁은 물길의 구석진 바위틈에 조용히 안착해 있던 내가 요즘 몇 달은 커다랗고 넓은 인연의 강에서 이리저리 닿는 대로 떠다니고 있다. 한 인연이 이어지자 그 인연으로 다른 인연이 이어졌다. 한번 물꼬가 터진 인연은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맺은 인연들이 알고 보니 또 서로 아는 사이인 게 드러나는 일도 종종 있다. 몇 년 전에 케빈 베이컨 게임이라고 해서 인간관계는 6단계만 거치면 지구 상 대부분의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는 이론을 이용한 게임이 유행하지 않았던가. 이쯤 되면 나의 새로운 인연들이 어떻게 케빈 베이컨과의 새 연결점이 되어 줄지 궁금해진다. 내가 나의 새로운 인연들에게 케빈 베이컨에게 어떤 연결 고리가 되어줄 수 있을 지도 궁금해진다.


분명한 것은 내가 미국 워싱턴 디씨 근교의 자연친화적인 도시 타코마 파크의 엄마들과 한국의 아름다운  제주도의 엄마들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은 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콩에 사는 블로그 친구와 미국 버지니아에 사는 직장 동료를 연결하는 고리도 되어주고 있다.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대학 1학년 동안 아주 친했다가 더 이상연락이 닿지 않는 학교 동기와 그리스에서 젊은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오랜 세월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예전에 아주 친하게 지냈던 직장 동료가 자기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 나를 통해 긴밀하게 연결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내향적인 성격 탓에 친구가 많지는 않지만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케빈 베이컨 게임에 자주 사용되는 게임 말일지도 모르겠다. 최소한의 관계가 있다는 기준의 인연으로 치면 상당히 많은 다양한 사람과 인연 지었다. 워낙 멀리 이사를 많이 다니고 다양한 일을 하고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 탓에 이 케빈 베이컨 게임에는 아마 톡톡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고 나와 몇 번이라도 서로 소통해 본 사람이라면 70여 개의 나라에서 온, 온갖 특이한 이력과 사연의 외국어 선생님들과 한 다리 건너서 연결되셨다.


언젠가 참가한 한 워크숍에서 워크숍 지도자가 내게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알게 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사람들이 생각하는 관점이 아주 다양하다는 것, 그렇지만 또 자세히 보면 사람들이 근본적으로는 아주 비슷하다는 것이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사실 관점이 다른 사람들과 인연 짓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런 관계에서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 나의 관점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선 당연하지 않은 경우가 너무나 많다.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다른 사람이 비추어 주는 경우도 많다. 워낙 다른 관점을 많이 접하다 보면 웬만한 일에는 다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생긴다. 남에게도 나에게도 조금은 너그러워진다. 나답게 사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결국 우리 모두는 아주 다르기도 하고 또 근본적으로 비슷하기도 한,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더 잘 비춰줄 수 있고, 또 비슷하기 때문에 서로를 더 잘 이해해 줄 수도 있는 그런 사이가 아닐까.


미국에 처음 갔을 때는 어딜 가든지 뭔가 내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었다. 대학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돼서 학과에서 신입생을 위한 파티를 열었던 적이 있었다. 처음 가본 미국식 파티에서 내내 뭔가 아주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나의 시선으로는 사람들이 음료수를 하나씩 들고 그냥 서성대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아직 파티가 시작하지 않았나 보다 생각하고 나도 음료수를 하나 집어 들고 구석에 자리를 잡고 서서 파티가 시작할 때까지 기다렸다. 한국 같았으면 누군가가 나서서 파티의 시작을 알리고 뭔가 게임을 하던지 행사를 하던지 다 같이 모여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가. 결국 당시의 내 관점으로는 마지막까지 사람들이 그렇게 서성대기만 하다가 그냥 흐지부지 파티가 끝났다.


미국의 파티 스타일이 한국과 다르다는 것은 그 후로도 파티를 여러 번 가 보고 나서야 알았다. 사실 미국식 파티야말로 적극적인 사교성과 세련된 스킬을 요한다. 자연스럽게 조금 안면이 있는 사람에게 접근해서 가벼운 담소를 나누다가 대화가 즐겁지 않거나 다른 사람으로 옮겨 가고 싶으면 음식을 가지러 간다던가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자리를 뜬다. 그러고 다시 조금 서성대다가 눈이 마주친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거나 눈여겨봐 둔 사람에게 접근해서 말을 건넨다.


미국의 파티장에서는 사교의 왈츠를 추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쪽에서 잠시 담소를 나누다가 또 다른 쪽으로 가서 담소를 나누고... 이렇게 작은 소행성들처럼 산발적으로 흩어져있는 그룹을 이쪽저쪽 옮겨 다니며 왈츠를 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는 사람이 많이 없는 큰 파티에서는, 특히 네트워킹이 목적인 파티에서는 어색함을 느끼는 때가 많다. 한동안은 서성이는 그 순간의 어색함이 싫어서 잘 아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소행성에만 내내 붙어 있다가 오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미국식 파티를 나만 어색하게 느끼는 게 아니었다는 거다. 물론 정말 잘 아는 사람들끼리 하는 소규모의 친밀한 파티는 괜찮다. 하지만 네트워킹이 목적인 파티나 아니면 꼭 네트워킹이 아니라도 직장이나 학교에서 여는 큰 파티에서는 알고 보니 미국인들 중에도 나처럼 어색한 느낌을 느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뿐인가. 아이가 어릴 적엔 가끔 아이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가면 잘 모르는 데다가 공통점도 전혀 없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는 때도 많은데, 그럴 때 보면 꼭 두 세 명쯤은 좀 어색해하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가끔 학회 같은 곳에서 열리는 아주 큰 파티에서는 참가자들이 아는 사람 하나만 만나도 서로 반가운 모습이 역력하다. 나만 이방인이라서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은 누구나 익숙하지 않은 관계에선 어색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어색함까지도 즐길 수 있는 경지에 이르면서 파티가 더 이상 어렵지 않았다. 사람들이 다 다른 것이 당연하고, 또 예상외로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끼면서부터 잘 모르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아 졌다. 익숙한 사람이 별로 없는 큰 파티에서 느끼는 어색함이 나 혼자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파티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이 모두 아주 친근하게 느껴진 적도 있었다. 어색하게 서성대는 나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걱정하기보다는 오히려 나처럼 서성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게 되었다. 사람들이 다 각자 다르지만 모두 다 똑같이 귀하지 않나 생각하면 모두에게 똑같이 다정하게 된다. 친밀감이 느껴진다. 결국에는 내 마음이 문제였던 것이다. 내 마음이 열리니 세상 모두가 친구가 되었다.


우리가 달라봤자 얼마나 다르겠는가. 기나긴 인간의 역사에서 본다면 우리 모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친밀한 사이이다. 어차피 우린 모두 다 케빈 베이컨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이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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