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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선생 Jan 05. 2021

진정한 사랑은 무엇일까

아버지가 더이상 나의 아버지가 아니었을 때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

나에게 진정한 사랑을 가르쳐 주신 분은 아버지셨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아버지 살아 계실적에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그리 살갑게 지내지 않았다. 오히려 어린 나의 시선에는 나의 아버지가 무책임해 보였고 어머니를 고생시키는 것 같았다. 고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자라서 그랬는지 아버지가 나이 들고 병이 드셨을 때조차도 조용한 나의 속마음은 언제나 불쌍한 어머니 편이었던 것 같다. 


그런 아버지가 생을 마치시는 마지막 순간, 아버지가 더 이상 내 아버지가 아니셨을 때 나는 진정한 사랑을 배웠다. 그 어떤 편견도, 원망도, 기대도 없어진 그 깨끗한 자리에 남겨진 순수한 사랑을 만났다.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을 만났다. 


아버지는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셔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가 일반 병동으로 옮기신 날, 마침 대학원 방학을 맞이한 내가 직장에서 병가를 다 쓴 언니들을 대신해 어머니를 도와 아버지 간호를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마음은 아픈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를 보살피느라 지친 어머니를 향해 있었다. 병원과 집을 오가는 길에 차를 타는 대신 조깅을 하고, 병실에서도 틈틈이 스트레칭을 하며 체력을 관리한 것도 지친 어머니가 원하실 때 쉴 수 있으려면 내가 지치면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 때문이었다. 온통 어머니만 자리 잡고 있던 그런 나의 마음속에 정작 병실의 주인공인 아버지는 없었다. 


암이 폐와 주변 조직의 큰 자리를 차지한 데다가 폐렴까지 오신 아버지는 숨쉬기에 조금이라도 더 편한 자세를 취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지기를 바라셨다. 당장 누웠다 일어났다 돌아 누웠다 바로 누웠다를 반복하길 원하시는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를 움직여 드리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던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숨이 차신 아버지가 지금 당장 일으켜 달라 하시는 데 아버지의 상체를 안은 나의 두 팔이 파김치처럼 축 늘어졌다. 분명 머리에선 팔에 힘을 주라 명령하고 있는 데 팔이 그 명령을 듣지 않았다. 누워 계신 아버지를 끌어 안고 울었다. "아빠 미안해요. 팔에 힘이 빠져서 어쩔 수가 없어요. 미안해요 아빠." 숨이 차 괴로운 아버지의 가슴팍 위에 엎드린 채 펑펑 울었다.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울면 날 용서해 주시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까지만 해도 내 마음속에는 미안함은 반 정도였고 아마 서러움도 반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팔에 힘을 주라 명령했으면 파김치 같은 팔일지언정 즉각 움직여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나는 아버지가 나의 힘듦을 봐 주시기를 바랬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게 아버지의 고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도 아마 그때부터 내가 보이신 것 같았다. 당장 움직이고 싶으셔도 재촉하지 않으셨다. 짜증이 줄으셨다. 아버지의 요구도 조금 줄어들고 나의 몸도 간호에 적응을 하면서부터는 아버지를 자세히 살피게 되었다. 비로소 아버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버지를 살피며 보살피던 어느 날, 숨이 차서 괴로워하시는 아버지를 반대쪽으로 돌려 눕혀 드리고는 문득 아버지가 어떤 느낌이실까가 궁금해졌다. 잠시 숨을 참아 보았다. 마치 이 병실 안에 산소가 아주 조금만 있는 것처럼, 숨을 참아 보았다. 참다가 너무 괴로워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만 아주 조금 숨을 쉬면서, 그렇게 몇 분을 아버지가 되어 보았다. 


몇 분도 채 가지 않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상상도 못 한 고통이었다. 단 몇 분도 참기 힘든데 하루 종일 이 괴로움을 느끼셔야 하는 아버지가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사람이 이런 느낌일까. 차라리 익사가 나을 것이다. 아무리 괴로워도 잠시만 지나면 끝이 나지 않는가. 


그 순간 아버지가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때부터 가슴으로 아버지를 보살피게 되었다. 어려운 마음도, 서러운 마음도, 단 하나의 망설임도 없어졌다. 아버지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 있다면 그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 쉴새 없이 사랑한다 말했다. 평생 그토록 하기 힘들었던 그 말이 그렇게 쉽게 흘러나올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치열했던 2주 남짓한 시간에 비하면 아버지의 마지막 날은 아주 고요했다. 더 이상 일으켜달라고도, 돌려 뉘어달라고도 하지 않는 아버지의 산소포화도가 서서히 내려가던 그때, 병상에 누워 계시던 그분은 더 이상 나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저 극심한 고통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 불쌍한 한 인간일 뿐이었다. 


아버지가 더 이상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한 인간의 모습이 되었을 때, 그 인간의 처절한 고통이 나의 무방비해진 가슴을 사정없이 내리쳤을 때 나는 진정한 사랑을 느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기대도 애착도 모두 사라진 그 자리에 단 하나, 오직 사랑만이 남았다. 차별 없는 사랑만이 남았다. 뜨겁지도, 안달하지도 않았지만 진실하고 완전한 사랑만이 남았다.  


사랑하는 한 인간의 고통이 끝나고 그의 일그러진 표정이 편안하게 펴졌을 때 나는 병실 구석에 조용히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믿지는 않지만 아마 어딘가에서 듣고 계실 듯한 신에게 속삭이듯 탄식했다. 


"감사합니다. 이 고통 끝나게 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 순간 나의 가슴이 폭발했다. 뜨거운 불덩이가 가슴에서부터 터져나와 온 몸으로 번져나갔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그 느낌에 그저 놀란 나는 그때는 그것의 의미를 몰랐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것이 아버지가 내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었다는 것을 안다. 

아버지가 남기신 진정한 사랑의 선물이었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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