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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선생 Jan 12. 2021

눈 역시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눈도 삶처럼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일지도.

오랜만에 단골 커피숍의 창가에 앉아 보슬비 내리는 바닷가를 내려본다. 아직 히터를 틀기 전인지 쌀쌀한 커피숍 2층의 공기가 묵직하고 차분하게 내려앉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바깥 바다에는 아마 바람이 세찬 듯하다. 일렁 일렁 일렁이는 파도를 타고 바다를 가로질러 가는 한치잡이 배의 일렁임에 바라보는 나의 뱃속도 함께 일렁인다. 바닷가 현무암 바위를 쉴 새 없이 내려치는 거센 파도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하얀 물안개가 단단하고 검은 바위를 흐릿하고 부드러운 모양으로 감싸 안는 모양이 아련하고 평화롭다.


반대편 한라산 쪽을 바라보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는 바위틈과 잔디 위와 듬성듬성한 집들의 지붕 위에 희끗희끗한 눈의 마지막 흔적이 남아 있다. 지난 며칠간 펑펑 쏟아진 눈 덕분에 새하얗게 뒤덮인 깨끗한 동화 속 세상 같던 제주의 풍경이 어느새 따듯해진 공기에 이런저런 사람 사는 정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조금씩 남아있는 옅은 눈의 흔적이 어렸을 때 부산에서 보았던 겨울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어렸을 때 단 하루라도 펑펑 내리는 하얀 눈과 함께 하는 겨울을 맞이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겨울이 와도 눈 오는 법이 잘 없고 산타클로스도 오지 않는 영도 다리 건너편에 위치한 우리 동네는 뭔가 신나는 일에는 모조리 소외된, 이 세상의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마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쯤이었지 싶다. 그런 우리 동네에 딱 한번 눈이 발목까지 올라올 정도의 높이까지 쌓인 적이 있었다. 드디어 다리 건너 구석진 우리 동네에도 축복이 내린 겨울이 왔다. 언니들과 온종일 뛰어다니며 만든 눈사람과 다들 나보다 키가 작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동네 남자아이들과의 치열했던 눈싸움이 분명히 기억난다. 사진 한 장 남겨 놓지 않은 그 날의 추억속 장면들이 가슴이 기억하는 벅찬 행복감과 함께 불혹을 훌쩍 넘은 나의 마음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사람은 뭔가 부족할 때 그것의 소중함을 더 깊이 느끼는 것 같다. 대학 시절 고향 부산과는 달리 눈 내리는 풍경이 흔했던 서울에서 첫눈을 만난 날, 동향 친구들과 눈을 맞으러 캠퍼스 운동장에 뛰쳐나간 적이 있다. 눈 내리는 운동장을 강아지마냥 신나게 뛰어다닐 때 우리 옆에서 어울려 함께 뛰어다니던 잘 모르는 친구들에게서도 익숙한 사투리가 들렸던 것은 아마 착각이 아니었을 테다.  


그랬던 내가 미 동부에서 10년을 넘게 살다 보니 눈에 대한 감정이 조금 더 복잡하고 다채로워졌다. 따듯한 방 안에서 내다보는 창밖의 눈은 하얗고 깨끗하고 보드랍고 포근하다. 온 세상을 하얗고 포근하게 덮어주는 그 모양이 깨끗해진 나의 마음에 하얗고 순수한 사랑을 쏟아부어주는 느낌이다. 하지만 문을 나서는 순간 드라이브웨이를 덮고 있는 하얀 눈은 부담스럽다. 오늘처럼 폭설 후에 약간의 보슬비라도 내린 날에는 물을 머금어 무거워진 눈덩이가 치우는 사람의 어깨를 짓누르는 모양을 떠올리게 된다. 질퍽해진 눈을 밟아 젖어버린 신발 속의 차갑고 축축한 느낌을 지레 걱정하게 된다.


워싱턴 디씨 근교에 살 때는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남편이 분주해졌다. 앞뜰에서 차고까지 기다랗게 이어진 드라이브웨이에 쌓인 눈을 치우는 일은 장정 둘이서 함께 일을 해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일이었다. 눈이 너무 많이 쌓이기 전에 한번 치워 놓아야 나중에 너무 힘들지 않게 치울 수 있다 말하는 매사 부지런하고 계획적인 남편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우리 집의 바깥일을 돌봐 주는 한없이 성실한 호세가 온동네를 하얗게 덮은 두꺼운 눈 카펫 위에 뽀드득 뽀드득 첫 발자국을 찍으며 우리 집에 도착하기도 훨씬 전에 남편이 먼저 혼자서 눈 치우기를 시작하곤 했던 것이다.


 내리는  남편이  치울 생각에  밖을 내다보며 잠을 설칠   역시 아이들의 데이케어와 나의 직장에서 보통 당일 새벽 즈음에 날아오는 이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곤 했다. 어쩌다  때문에 데이케어는 문을 닫지만 나의 직장은  닫지 않는 날이라도 오면 아직 어린 아이들과 함께 재택근무를 하느라 나의 집중력과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 받는 날도 있었다. 유난히 직장일과 육아로 바쁘던 어느 겨울, 사정도  봐주고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눈이 차갑고 매정하게 느껴진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얀 눈이 내리는 모양을 보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삶을 살아 내느라 내리는 눈이 더 이상 그저 하얀 축복이지만은 않았던 그런 순간에도 사실 해야 할 일이 분주한 것이 문제였지 눈이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일 아이들 데이케어가 문을 닫을 까, 내린 눈을 어떻게 치우려나 생각하며 잠을 설치는 밤에도 우연히 내다본 창 밖으로 흐릿한 가로등 빛에 비추어진 눈발이 흩날리는 모양을 볼 때면 하얀 꽃잎들이 내 마음속 따듯한 바람을 타고 춤을 추는 듯했다. 갓 구운 케잌처럼 따듯해진 마음 위로 달콤한 설탕 파우더가 뿌려지는 느낌이었다.


사람 사는 정취 가득한 창밖 제주 풍경 속에 여기저기 남아있는 눈의 흔적을 내려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겪기에는 차가워도 보기에는 포근한 눈의 모습이 우리네 삶과 비슷하구나 생각되었다. 찰리 채플린도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문 밖으로 발을 내디딘 사람에게는 사정없이 차가운 눈이지만 집 안에서 창 밖으로 내다보는 눈은 보드랍고 포근하고 따듯하게까지 느껴지는 것이 겪을 때는 힘든 일마저도 돌아보면 아련하고 그립기까지한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을 닮아 있는 듯 하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쌓인 눈을 치우고 젖은 신발을 말리느라 손과 발이 분주할 때에도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포근한 눈 내린 풍경이 주는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살다가 어쩌다 비극의 순간을 겪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 비극의 순간 너머 삶의 전반에 넓게 펼쳐져 있는 거대한 희극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커다랗고 사랑 가득한 하얗고 깨끗한 마음의 눈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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