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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선생 Jan 18. 2021

살아가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

사람이 살아가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과 용기가 아닐까

선물처럼 갑자기 날씨가 따듯한 날이다. 따듯한 공기를 즐기러 오랜만에 산책을 나갔다가 때 아닌 꽃을 발견했다. 이 꽃들이 대체 어떻게 나타난 걸까? 꽁꽁 얼은 땅을 뚫고 얼마 전에 내린 눈마저도 견디며 피어난 기적 같은 이 꽃은 수선화라고 했다. 주로 추운 겨울, 12월에 피기 시작하여 날씨가 따듯해지는 3월이 되면 지는 꽃이라고 했다. 제주의 검은 돌담 앞에 하얀 블라우스 칼라를 받치고 서서 샛노란 얼굴을 하고는 겸손하게 고개까지 숙이고 서 있는 자태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가니 겸손한 자태 아래 강인함을 감추고 있는 이 꽃의 진한 향기가 코를 스쳤다. 숨을 힘껏 들이마시는 나에게 작은 꽃에서 나오는 거대한 사랑이 전해져 왔다. 생생한 자연의 에너지가 온몸을 채우며 힘이 솟았다. 용기가 솟았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만화 영화 중에 ‘꼬마 자동차 붕붕’이라는 만화가 있었다.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나는 붕붕은 엄마 찾아 모험 찾아 세계 여행을 나서고, 그 여정에서 온갖 역경을 마주치지만 항상 당찬 용기를 보여준다. 꼬마 자동차는 용감하다. 주제가 가사에서처럼 용감한 꼬마 자동차 붕붕은 사랑과 희망을 전해주며 신나게 달린다. 붕붕에게 수선화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추운 겨울에도 용기를 얻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며칠 전 큰 아이가 눈을 다쳐서 집에 왔다.


"어머니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걱정 어린 목소리로 시작하는 선생님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당장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큰일은 아니겠지 했다. 아이가 친구와 피아노 학원 차 안에서 장난을 치다가 친구의 손가락에 아이의 한쪽 눈이 쓸린 모양이었다.


아픈 눈을 뜨지 못하는 아이가 나머지 성한 눈으로 나를 보고는 달려와 와락 안겼다. 병원을 가야 할 일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이것저것 묻는 나에게 아이는 친구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부터 했다. 친구부터 두둔하는 아이가 안쓰럽기도 사랑스럽기도 해서 더 꼭 안아주었다.


근처 중형 병원에 갔더니 필요한 기계가 없어 검사를 못하니 큰 병원에 데리고 가라고 했다. 큰 병원이라는 말에 순간 덜컥 겁이 났다. 큰 병원이라면 남편이 작년에 암 진단을 받았던 대학 병원 밖에는 알지 못한다. 한 번 놀랐던 심장이 그저 큰 병원이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뛰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게 되었다. 불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참 신기한 일이다. 언젠가부터 불안하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서 용기가 불쑥 솟아오르곤 한다. 용기가 용솟음칠 때는 마음이 오히려 차분히 가라앉는다. 이날도 불안한 생각이 올라오는 동시에 갑자기 마음이 차분해졌다.


대학병원 대신 차분해진 마음으로 인터넷을 검색하여 찾은 근처의 큰 안과를 찾아가는 길, 나에게 몸을 꼭 밀착시키고 걷는 아이에게 말했다.


“괜찮아. 걱정 마.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다 괜찮을 거야. 의사 선생님이 잘 봐주실 테니 선생님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 알았지?"


아이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사실 아이에게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만약의 경우에, 만에 하나 괜찮지 않은 일이 생긴다 해도 용기 있게 헤쳐나가면 된다는 생각도 했다. 한때 내가 어떤 일로 심하게 힘들어할 때 나에게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 일러주셨던 어머니 생각도 했다.

  

각막이 긁힌 것으로 드러난 아이의 눈은 보호 렌즈를 끼고 지낸 지 며칠 만에 다시 좋아졌다. 흐르던 눈물이 멈추었고 충혈된 눈이 맑아졌고 잠시 나빠졌던 시력도 다시 좋아졌다. 다행스럽게도 진짜로 큰일이 아니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정말로 다 괜찮은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용기를 만난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던  같다. 남편이  진단을 받은 .  진단은 받았지만 전이 여부도, 진행 정도도 아직 알지 못해 추가 검사를 예약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쌍한 남편에 대한 연민에 휩싸였던 그때도 어디서 오는지 모를 커다란 용기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와 깊은 위로를 주었다. “괜찮다.  괜찮을 것이다. 만약의 경우에 그렇지 않다 해도 얼마든지 용기 있게 헤쳐나갈  있다.”

 

고난이 닥쳤을 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이 용기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용기는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삶에 대한 믿음에서 오는 게 아닐까.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선물 같은 경험이구나 생각했던 때가 떠올랐다. 몇 번의 계기를 통해서 서서히 삶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구나 알게 되었다.


용기가 샘솟을 때에는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오히려 괴로움이 줄어들고 행복감은 더해지기까지 한 때도 있었다. 그런 때는 사는 것이 편하고 쉬울 때는 느끼지 못했던 삶에 대한 애정과 열의가 샘솟는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행복을 주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사소한 일상이 주는 행복을 더 이상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 일상의 평화가 깨질 위기가 닥쳤을 때 평범한 일상 가운데 행복이 지천에 널려 있구나 알게 된다.


사람 살아가는 데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과 용기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용기는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소중한 경험으로 만들어 준다. 사랑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준다면 용기는 우리가 어려울 때 삶을 살아갈 힘을 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동생과 장난을 치면서 다시 맑아진 눈으로 해맑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아이가 앞으로 꼬마 자동차 붕붕처럼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올라왔다. 붕붕처럼 사랑과 희망을 전해주며 신나게 달리길 바랬다. 달리다 역경을 마주치면 잠시 멈추어 꽃향기를 맞을 수 있기를. 스스로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용기를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랬다. 괜찮다. 걱정마라. 마음을 단단히 먹어라... 이 엄마의 잔소리가 들을 때는 와 닿지 않더라도 나중에, 살아가다 한참 나중에라도 꼭 필요한 순간 기억이 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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