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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선생 Mar 10. 2021

온돌

일상을 가득 채운 온기

밤 사이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진 아침이었다. 16도에 맞춰둔 보일러에 파란 불이 들어와 있는 걸 오랜만에 본 듯했다. 아침에 방바닥에 깔아 둔 이불을 개려고 요 아래에 손을 넣는 순간 온돌 바닥의 따듯함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요 아래로 팔을 쓱 집어넣자 말려 올라간 옷소매 아래로 드러난 팔뚝의 맨살에 따듯함을 품은 부드러운 이불의 포근함과 바닥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온기가 닿았다. 팔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온기인지 행복감인지 구분하지 못할 환한 느낌이 온몸을 채웠다. 


순간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올랐다. 가진 게 참 없었던 시절이었다. 적어도 영도 다리 건너편 우리 동네는 그랬다. 그 다리 건너 동네 안에서도 유난히 가진 것은 없고 아이들은 많은 집이 우리 집이었다. 학교에서 불우 이웃 돕기를 한답시고 쌀을 가져오라며 한 장씩 나눠준 하얀 편지 봉투에 어머니는 쌀을 조금만 넣으시고는 납작하게 눕혀서 딸들에게 돌려 주시곤 했다. 쌀이 반도 채 안 들어간 봉투를 손바닥 위에 편편하게 눕히면 가득 찬 봉투가 된다는 억지 마술을 부리셨다. 좀 더 넣어 달라고 떼쓰는 내게 어머니는 선생님이 뭐라고 하시면 우리 집이 불우이웃이라고 말하면 된다고 하셨었다. 선생님께서 아무 말씀 안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어머니가 하신 모양 그대로 봉투를 편편하게 눕혀서 머뭇거리며 내밀었던 기억이 난다. 그 머뭇거림 뒤에 숨겨진 부끄러움을 눈치채지 못한 선생님이 나의 넉넉치 못한 마음을 나무라셨던 것과 그때의 억울했던 마음과 내가 마음이 넉넉치 못한 사람이 되더라도 차마 우리 집이 불우이웃이란 말은 하지 않겠다 생각했던 당시 나의 어렸기에 더 꼿꼿했던 자존심이 기억난다. 


모든 게 부족했던 그 시절에도 지금 미국에 있는 나의 동료들이 들으면 다들 멋지다고 하는 신문물 같은 것이 우리 집에 하나 있었다면 그건 바로 온돌방이었다. 번개탄 한 장 쓰기가 아까워 연탄불이 행여 꺼질 새라 어머니가 부지런을 떠신 덕분에 우리는 한 겨울에도 하루 종일 따듯한 방바닥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방바닥은 따듯해도 쌀쌀한 웃풍을 어쩔 수가 없는 것이 옛날 집이었다. 사실 우리 집뿐 아니라 옛날 집들은 태생이 다 그랬다. 비틀어진 나무로 된 창문 틀은 아귀가 맞지 않아 바람이 쉬 들락날락했다. 집안에서도 "하~ 호~" 하면 일어나는 하얀 입깁을 보며 그날의 기온을 어림짐작 하던 시절이었다. 


아마 그래서인가 보다. 내 기억 속 어린 시절의 겨울은 유난히 춥다. 요즘 겨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어린 우리 자매들은 썰렁한 집안 공기 때문에 집안에서도 두꺼운 겉옷을 입고 지냈더랬다. 그러니 다들 겨울만 되면 방바닥에 깔아놓은 이불속으로 다닥다닥 들어가 붙어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따듯한 온돌 덕분에 한 겨울에도 이불 하나면 거뜬했지만 이불 밖은 사정이 달랐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변비를 앓게 되었던 이유가 추운 겨울 이불 밖으로 나와서 집 바깥에 있던 화장실까지 가는 것이 싫어서 참고 또 참았기 때문이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산 사람들이라면 그랬던 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지 모르겠다. 한 이불 아래서 식구들과 누가 범인인 줄 모를 방귀 냄새 잔뜩 머금은 이불을 들추며 코를 막았던 기억을 다들 하나쯤은 갖고 있지 않을까. 


따듯한 온돌방 바닥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갑자기 와락 떠오르던 그 순간 그때에 비하면 내가 지금 이 순간 가진 것이 참으로 많구나 깨달았다. 마치 잊고 지냈던 추억들이 기억 창고의 바닥에서부터 불쑥 떠오르면서 지금 이 순간에 대해 내가 잊고 지내는 것들 역시 함께 기억의 표면으로부터 와르르 들춰낸 듯했다. 하나씩 하나씩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소중한 것들이 떠올랐다. 소중한 것들의 리스트가 길어짐과 동시에 나의 가슴 한가운데에 감사함이 환하게 차올랐다. 


리스트는 지금 내가 단열이 잘 되는 이 집에 사는 덕에 따듯한 아침을 보내고 있다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불 아래에 닿은 내 두 팔 뿐 아니라 두꺼운 겉옷을 입지 않은 나의 몸 역시 따듯하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지금 신고 있는 나의 양말에 구멍이 없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집에 우리 집 식구수대로 우산이 하나씩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우리 어머니와는 달리 자식들 끼니 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감사했다. 자식들 준비물 살 돈 걱정은 안 해도 되는구나 감사했다. 


더 이상 학교에서 불우이웃을 돕자고 쌀을 가져오라 하는 일은 없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봉투를 두둑하게 채워줄 수 있을 테니 정말 멋진 일이다. 어릴 적 내가 간절하게 다니고 싶어 했으나 못 다녔던 피아노 학원을 지금 우리 아이들이 둘 다 다니고 있다는 것이 벅차게 행복한 일이다. 과학 기술이 이토록 발달해서 지금 내가 이 코로나 시국에도 따듯한 방 안에서 인터넷으로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영화도 실컷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랄 정도로 감동적인 일이다. 감사한 것들의 리스트가 끝이 날 줄을 몰랐다. 오늘날 나의 삶에 대한 벅찬 감동이 올라왔다


세상엔 감사한 것들이 참으로 많구나. 코로나로 힘든 지금 이 순간마저도 온통 축복이 나의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작지만 기적 같은 이 따듯한 방바닥과 방안의 온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만 내가 잊고 살고 있었던 건가 보다. 잊고 지낸 매 순간마저 따듯한 온기가 나의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게다. 내가 알든 모르든 이미 삶은 축복으로 가득 차 있었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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