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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선생 Nov 19. 2023

명상 수련 가는 길에 흐르다

아디야 샨티의 명상 수련을 향한 여정

지난 글 <힘 빼고 사는 삶의 힘>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가족 간의 관계가 제일 어려웠다는 말을 제가 했던가요? 매일 가족을 통해 나를 돌아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정직하고 소중한 거울입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가족을 통해 비치는 나의 모습을 잘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아주 천천히지만 점점 알아채게 된 것은 많은 분들의 도움과 삶의 친절한 이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삶에 이끌려 명상을 하며, 현존의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에 서서히 빠져가던 어느 날, 마음의 균형이 와장창 깨지고 미움이 저를 갉아먹으며 속수무책으로 원망과 괴로움의 구렁텅이로 빠진 사건이 발생합니다.




참으로 귀하고 참으로 사랑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한 것이 남편 탓이라고 굳게 믿었었습니다. 어머니가 상태가 안 좋으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바로 출발하려는 저에게 시기를 잘 맞추어서 가라고 조언 했던 탓입니다. 그 말을 듣고 망설임 끝에 다음 날 출발한 저는 가는 도중에 연결편 항공기를 기다리다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듣게 됩니다.


남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던 건 사실 접니다. 남편이 뭐라고 했던 제가 바로 출발하겠다고 했어도 될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참을 수 없도록 미웠습니다.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망하는 것이 후회하고 슬퍼하는 것보다 훨씬 쉬웠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망이던 후회던 슬픔이던 그때의 저는 이 모든 것이 마냥 싫었습니다. 남편도 아이들도 나를 옭아 매는 것 같아서 밉고 답답하고 싫었습니다.


컵 하나 치우라는 잔소리에 내가 아직 다 마셨는지도 모르면서 컵을 치우라고 한다며 바락바락 악을 지르고 싸우는 날들이 늘어 갔습니다. 다 마셨건 아니건 중요치 않았습니다. 컵을 치우라는 말을 들으면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하늘의 뜻마저도 아는 척, 잘난 척했던 남편이 원망스런 마음이 불쑥 불쑥 올라왔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남편이 죽도록 미웠습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예전에 썼던 글이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어지간히도 괴롭혔나 봅니다. 어느 날 남편이 어떻게 하면 나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을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겠으니 제발 어떻게 하면 예전처럼 돌아올 수 있겠냐는 남편의 맹세인지 고백인지 읍소인지 알 도리 없는 말을 듣고서야 제 스스로가 돌아봐졌습니다. 이것이 나의 문제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지난 글에 소개드렸던 <참된 명상>의 저자 아디야 샨티가 지도하는 일주일간의 명상 수련에 참가하기로 합니다.


명상 수련의 장소는 캘리포니아의 마운트 마돈나, 당시 제가 살던 동부에서 비행기를 한번 갈아타고가야 하는 먼 여정이었습니다. 만 3살 5살 어린아이들을 남편에게 혼자 맡겨두고 무거운 길을 떠났던 저는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자마자 가볍고 생생한 에너지가 나를 감싸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8시간의 여행 끝에 산호세 공항에 도착했을 때 예상치 못한 소식을 이메일로 받게 됩니다. 이 지역에 지난 며칠간 쏟아진 폭우로 인해 마운트 마돈나 명상 수련장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는 겁니다. 수련장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세 가지 길이 있는 데 그중에 두 길이 산 중턱에서 막혀 있고 단 한 길이 열려 있는데 그것도 지금의 상태는 알 수 없으며 게다가 그 길은 제가 있는 장소에서 다른 도시 쪽으로 한참을 우회하여 가야 하는 길이라는 겁니다.


명상 수련장다운 이메일이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의 조우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는 말로 마친 이메일에는 어떻게 오라는 말도, 어떻게 도울 수 있다는 말도 하나 없었습니다. 수련은 당연히 제시간에 시작할 것이었기에 일정에 대한 언급조차 아예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공항에서 우버 택시를 타는 저의 마음이 모험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걱정은커녕 어떤 일이 일어날까 호기심 넘치는 아이처럼 우버 기사 아저씨에게 이메일의 내용을 전달하며 아저씨에게 선택을 맡겼습니다. 어떤 길이든 좋으니 저를 이곳에 데려다주세요.


여러분도 느끼신 적이 있으신가요? 갑자기 삶이 흘러가기 시작하는 때가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이어지는 어떤 흐름을 느끼게 되는 때 말입니다. 그런 때는 걱정을 내려놓고 그저 맡기고 따라가면 됩니다. 작은 소견으로는 알아채지 못하는 거대한 흐름을 이미 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맡기고 가는 길에 드러나는 소소한 풍경의 아름다움이나 감상하며 함께 흐르면 됩니다. 가다가 걸리적 거리는 돌덩이라도 만나면 돌아가던지 넘어갑니다. 여기 왜 돌이 박혀 있냐고 따지고들 필요도 없습니다. 여유가 있다면 잠시 멈춰 다음 사람을 위해 박힌 돌멩이를 뽑아두고 다시 흐르는 것도 아주 즐거운 일일 겁니다.


인도에서 이민 오셨다는 우버 기사 아저씨는 공항에서 꽤 먼 곳에 살고 계셨습니다. 아마 저를 내려준 다음 두 명의 딸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곧장 향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아저씨는 이미 막혀 있다고 알려진 가장 짧은 길로 향하셨습니다. 지금쯤이면 복구가 되었을 것 같다 하시며 만약 막혔다 하더라도 수련장까지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내려다 주시겠다 했습니다. 워싱턴 디씨에서 출발할 때부터 이미 흐르기 시작한 제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모험심도 발동했습니다. 아저씨 말처럼 우리가 도착할 때에 딱 맞춰 길이 복구되는 멋진 일이 생기진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섞인 호기심도 거들었습니다.






한참을 꼬불꼬불 어두컴컴한 산길을 오르고 올라 [Road Closed] 표지판이 나왔을 때 용감한 우버 아저씨는 표지판을 지나 앞으로 앞으로, 딱 차 한대 넓이의 길을 따라 올라가셨습니다. 한 5분쯤 더 올라갔을까요? 갑자기 좁아진 길이 아저씨의 고집을 꺾었습니다. 차 한 대의 넓이도 나오지 않는 길 양옆으로 깎아져내린 흙이 아슬아슬 가파른 경사에 헐렁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어두컴컴한 숲속에서 거인이 갑자기 나타나 우리의 차를 번쩍 들어서 좁아진 길의 반대편에 내려놓지 않는 한 이 차를 타고 계속 흐를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미 한 시간가까이 올라온 길을 다시 돌아가는 건 이때까지의 모험에 찬물을 끼얹는 일입니다. 오늘처럼 극적인 흐름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핸드폰 시그널이 멈춘 지 오래라 수련장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다행히 시그널이 있을 때 핸드폰에 캡처해 둔 지도가 몇 장 있었습니다.


좁은 산길을 후진하며 내려가는 우버 아저씨와 앞을 모르는 길을 떠나는 저는 서로에게 행운을 빌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한 손에는 배터리 반쯤 남은 핸드폰 하나 들고 다른 손으로 바퀴달린 캐리어 가방을 끌면서 저는 얼마나 가야 하는지도, 어떻게 가야 하는 지도 모르는 숲길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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