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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선생 Nov 22. 2023

명상 수련 가는 길에서 만나다

아디야 샨티 명상 수련 가는 길에서 만난 인연

지난 글 <명상 수련 가는 길에서 흐르다>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한참을 산속의 포장된 길을 따라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데 온갖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이 길이 맞는 건 분명하겠지.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할까. 설마 산속에서 길을 잃는 건 아니겠지. 끊어진 이 길에는 차도 다니지 않을 텐데 산속에서 조난을 당하진 않을까. 이런저런 불안한 생각이 올라왔을 때 산이 저에게 용기를 불러일으켜 주었습니다. 


새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현재로 돌아왔습니다. 마치 나에게 여길 봐, 내가 지금 여기 있어하며 말을 거는 것처럼 새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소리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광대한 공간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 여기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숲 속의 맑은 공기가 코끝을 간질이며 가슴으로 들어와 온몸으로 퍼질 때 저의 마음이 지금 이 순간으로 이끌렸습니다. 산길을 딛는 발바닥의 감촉이 경쾌하게 느껴질 때 몸의 에너지가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온몸에서 퍼지는 에너지가 숲과 나 사이를 자유롭게 흘렀습니다. 한발 한발 내딛는 순간의 환희를 느끼며 걸어가는 마음이 활짝 열렸습니다. 두려움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삶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명상 수련이 그때부터 이미 시작한 것입니다.  



한참을 흘렀나 봅니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등산객 커플을 만났습니다. 이 커다란 산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했습니다. 마실 나온 듯한 행색을 보니 산짐승 걱정은 안 해도 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마운트 마돈나 수련장까지 얼마나 남았나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금방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다행이다 생각했습니다. 정말 금방이라고 믿었습니다. 다시 한참을 흘러 흘렀습니다. 삼사십 분쯤 지났을 때 금방이라고 했었으니 지금쯤이면 지금쯤이면... 기별이라도 보여야 했지 않을까, 길을 잘 못 든 건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엔 딸과 아빠가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이번에도 조금만 가면 된답니다. 가는 방향도 맞고 지금처럼 이 포장된 길을 따라 죽 따라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안심했습니다. 다시 한참을 걸었습니다.


세 번째로 만난 개와 걷는 커플에게 마지막으로 묻고 난 후로는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들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분명 금방이라고 할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뭐라 하든 저는 그냥 계속 걷는 도리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마운트 마돈나의 등산객들은 축지법이라도 쓰는 걸까요? 그들에게는 두세 시간쯤은 정말 금방인 걸까요? 아니면 산길에 혼자서 캐리어를 끌고 가는 이 어리숙한 동양인 아줌마가 불쌍해 보여서 희망을 주고 싶었던 걸까요? 우버 아저씨와 인사한 후 한두 시간은 족히 흐른 후에야 저는 드디어 자동차가 다니는 큰길에 다다릅니다. 핸드폰에 캡처해둔 지도에서 봤던 큰길입니다. 수련장으로 향하는 세 가지 길이 하나로 만난 길입니다. 


이제 적어도 길은 잃지 않겠다 안심한 저는 다시 타박타박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까지도 여전히 등산객들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저는 지도의 축적도 알지 못하면서 이제는 정말 금방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몰라서 무식했습니다. 가끔은 모르는 게 약입니다.  


Mount Madonna Trail


두 세대의 자동차가 제 옆을 지나간 후였던 것 같습니다. 차 한 대가 제 옆에 섰습니다. 깡마른 노인 한 분이 창문을 내리며 물었습니다. 


"마운트 마돈나 수련장에 가시는 길인가요?" 

"네. 당신도 그러신가요? 그렇담 저를 태워주실 수 있으신가요?"  


깡마른 할아버지가 첫 질문에 채 대답도 하기 전에 제발 나를 태워달라고 졸랐습니다. 두 시간 동안 산길을 걸은 제 발바닥의 감촉이 이제 더 이상은 경쾌하지 않은 탓이었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이 자동차의 좌석에 촥하고 달라붙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눈이 유난히 반짝였던 기억이 납니다. 얼굴색이 어두웠고 몸이 심하게 말랐지만 눈이 맑은 건지 눈물이 고인 건지 눈이 유난히 반짝이던 할아버지는 산 아래 마을인 길로이에 살고 계셨습니다. 손녀가 이곳 마운트 마돈나 수련장에 연계된 대안학교에 다닌다고 하셨습니다. 본인도 지금 명상 수련 참가 등록을 위해 올라가는 길이며 이제껏 아디야 샨티의 수련에 여러 번 참여하셨다 했습니다. 


오는 길에 겪은 나의 모험을 들은 할아버지가 아이처럼 신기해 하시며 제가 아디야 샨티의 수련에 참가하는 이유를 물으셨습니다. 명상에 이끌려 이곳에 오게 된 저의 그간의 사연을 들은 할아버지가 제대로 찾아왔다며 기뻐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췌장암 환자라 털어놓으시며 이번이 마지막 수련이 될지도 모른다 하셨습니다. 놀라서 괜찮으시냐 묻는 제게 지금은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남은 삶인지 모르겠지만 남은 시간 차분하게 돌아볼 생각으로 명상 수련에 참가한다며 담담히 말씀하셨습니다. 볼이 홀쭉하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선합니다. 유난히 반짝이던 눈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저는 명상 수련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가는 길에 지쳐 쓰려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를 타고도 한참을 흐른 후에야 명상 수련장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경험 많은 할아버지의 친절한 안내로 수련장을 둘러보고 등록을 마쳤습니다.  


저와 달리 숙소에서 묵지 않으시는 할아버지가 산을 다시 내려가신다고 하셨습니다. 헤어지기 전 포옹으로 인사하는데 할아버지의 앙상한 몸이 느껴졌습니다. 언제 아스러져도 놀랍지 않을 몸에서 7년 전에 폐암으로 돌아가셨던 나의 아버지가 느껴졌습니다. 눈물이 왈칵 올라와 나의 눈도 반짝였습니다. 울렁 반짝이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이 평안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명상 수련이 시작한 이후로 할아버지와는 단 한마디도 더 나누지 못했습니다. 침묵 수련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자신의 내면에 머무를 수 있도록 모두가 서로를 배려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한 차례씩 있는 아디야 샨티와의 대담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는 일주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내가 서로의 옆을 지나갈 때마다 느낄 수 있었던 그 따스한 연결감을. 서로를 위한 기도의 마음을. 


Mount Madonna  Center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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