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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선생 Nov 25. 2023

아디야 샨티 침묵 명상 수련

아디야 샨티 수련에서 발견한 삶의 의지처

지난 글 <명상 수련 가는 길에서 만나다>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명상 수련 스케줄은 아침 6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해서  밤 10시에 소등을 할 때까지 식사 시간과 쉬는 시간, 산책 시간,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있었던 아디야 샨티와의 대담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앉아서 명상을 하도록 짜여 있었습니다. 침묵 수련이라  좌선 명상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대화를 전혀 하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도록 안내받았습니다. 핸드폰도 꺼두었고 외부와의 연락은 비상 상황이 아니면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상 하루 종일 명상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식사도 휴식도 산책도 혼자서 말없이 오롯이 내면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생전 처음으로 참가한 명상 수련이 침묵 수련인지라 원래 그런 건 줄 알았습니다. 모든 명상 수련이 침묵 수련인 줄 알았습니다. 6년 후에 에카르트 톨레의 수련에 갔을 때는 침묵 수련이 아니어서 또 놀랐습니다. 모두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출처: pexels.com


당시 워싱턴 디씨에서의 제 일상은 온갖 것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물건으로, 자극으로, 활동으로, 생각으로, 감정으로, 소통으로 늘 분주했습니다. 그래서 더 특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7일 동안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나의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이라니, 생각만으로도 설레었습니다. 수련이 시작하기 전에 숙소에 체크인하면서 만난 전국 각지에서 온 룸메이트들은 모두 이번이 첫 수련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아디야 샨티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오랜 수행자들이었습니다. 다들 대단한 존경심을 표하며 명상 수련에 큰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저는 침묵 수련 첫날부터 집에 가고 싶어 졌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는 것이 무척 이상하고 어색했습니다. 명상을 한다고 앉아는 있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끊임없는 아우성이 올라왔습니다. 명상에 몰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도 진지하게 마음을 다잡고 앉아 봤지만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이게 뭐 하는 건가... 내가 이렇게 큰 시간과 비용을 내서 어린아이들까지 떼어놓고 와서는 연락도 못하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도대체 내가 왜 명상을 배우고 수행을 하려고 하는가, 뭘 깨닫고 뭘 이루려고 하는 건가? 온갖 망상과 혼란스러움이 올라왔습니다. 


문득문득 현존하며 평화스러운 순간이 왔다가도 다시 부정적인 생각으로 빠지는 혼란스러운 일이 하루 종일 반복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맘껏 명상하라고 말 그대로 멍석까지 깔아줬는데도 이런 지경인 제가 한심하고 절망스러웠습니다. 이대로라면 명상을 배우기는커녕 일주일 동안 괴로움만 잔뜩 느끼고 가겠구나는 생각에 억울했습니다. 교통편만 있다면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단 생각이 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출처: 마운트 마돈나 명상 센터의 웹사이트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못하며 하루가 훌쩍 가고 저녁 대담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때쯤에는 이미 명상을 제대로 배우겠다는 열정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기왕에 이렇게 된 바에야 오전 대담 시간에는 너무 멀리 앉아서 보기 어려웠던 아디야 샨티의 얼굴이나 가까이서 자세히 봐야겠단 생각뿐이었습니다. 저녁도 거르고 일찍부터 자리를 잡아 커다란 강당의 맨 앞줄에 앉았습니다. 


가까이서 본 아디야 샨티는 매우 투명한 느낌이었습니다. 투명하리만큼 하얀 피부에 희끗희끗한 머리를 하고 하얗고 하늘하늘한 셔츠를 입은 그가 고요한 강당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일제히 의자에서 일어났습니다. 익숙한 모습으로 합장하며 고개 숙여 인사한 그가 단상 위의 의자에 천천히 앉는 모습이 묘하게 고요했습니다.   



출처: 아디야샨티 웹사이트


간단한 가이드 명상과 함께 시작된 대담이 점점 진지해지기 시작하며 저도 서서히 그 시간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음공부 과정의 혼란스러움, 우울증을 앓는 아들에 대한 질문, 명상 중에 올라오는 트라우마의 기억 등, 이런저런 심각한 질문에 통찰력 있으면서도 일상적이고 편안하게 답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언뜻 들어도 느껴지는 깊은 지혜와 인간적인 모습에 감탄하고 있던 그때였습니다. 


질문하려고 손을 든 수많은 사람들 중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키 작고 통통한 남자 한 남자를 아디야 샨티가 가리켰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일어나서 하는 말이 딱 내 마음입니다. 명상 수련이 처음이라는 그 남자도 첫날인 오늘 하루 종일 똥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했답니다.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 혼났답니다. 여기 온 다른 사람들은 다 훌륭한 명상가인 것처럼 보이는 데 도대체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이 시간이 끝나면 말도 못 하니 지금 이야기를 들어야겠어서 질문을 했답니다. 명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알려달라는 겁니다. 


진지한 사람들 사이에서 똥강아지의 솔직한 외침이 경직된 강당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꾸었습니다. 초보수행자의 솔직한 말과 재미난 표현에 웃음이 터지며 걱정도 긴장도 함께 날아갔습니다. 아디야 샨티의 대답도 질문만큼이나 위트 있어서 웃었습니다. 대답을 듣고 첫날 엉망진창으로 느껴졌던 나의 명상 체험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안도했습니다. 어찌 됐든 솔직하고 순수한 질문과 위트 있는 대답이 저를 포함한 강당에 앉은 사람들의 마음을 활짝 연 것은 분명했습니다. 


대화가 끝나자마자 갑자기 용기가 솟은 제가 손을 번쩍 든 것을 보면 말입니다. 




아디야 샨티와 제 눈이 딱하고 마주쳤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코앞에 앉은 동양인 여자가 손을 번쩍 들었으니 눈에 띄었지 싶습니다. 저를 가리키는 그의 손가락을 보고 "아이쿠!" 바로 후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질문을 하기 위해 마이크로 걸어가면서 다리가 후들 후들 떨렸습니다. 그러다 질문을 시작하자 긴장이 서서히 풀렸습니다. 


"저는 우연히 영성에 대한 책을 읽다가 현재에 이 순간에 생생하게 깨어있으면서 조건 없이 자유롭고 행복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 후로 혼자서 명상을 하기 시작했고 당신의 책 <참된 명상>을 읽고 여기까지 이어졌습니다. 명상 수련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들을 무시하자는 건 아니고 (웃음) 확률적으로 따지자면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 중에서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그 자리에 앉게 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아디야 샨티처럼 깨달을 확률을 따지는 초보 수행자의 농담 어리지만 솔직한 질문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아디야 샨티가 "자, 이제는 확률마저 따지는군요. 리스크 관리에 들어가는 건가요?"라고 받아치자 다시 한번 크게 웃음이 터졌습니다. 긴장이 완전히 풀렸습니다. 


함께 웃던 그가 잠시 후 진지한 표정으로 깊고 큰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백만 명 중에 한 명이라면 어떻습니까? 만약에 제가 천만 명 중에 단 한 명, 딱 한 명이라고 답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이것을 포기하시겠습니까?" 


그제야 저의 솔직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게 바로 제 질문인 듯합니다. 저는 이게 정말 제가 원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도 크게 불편한지 모르고 평범하게 직장 다니며 아이들 키우며 나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제가 왜 명상을 하고 마음공부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에 대한 아디야 샨티의 대답이 평생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날 이후 살아가는 내내 제 마음의 깊은 의지처가 됩니다. 


Trust yourself.
스스로를 믿으세요.

"당신이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큰 결심을 해야 했습니까? 직장에서 휴가를 받았을 것이고 아이들을 놓아두고 교통편을 구해서 여기까지 오는 길이 쉽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당신은 그 시간과 돈과 열정으로 캐러비안 해안으로 휴가를 떠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다른 재미난 일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당신뿐 아니라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럴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린 모두 여기 이렇게 왔습니다. 왜 굳이 여기에 오기를 선택했을까요? 무엇이 당신을 이리로 이끌었을까요? 분명 당신 자신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미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이끌어온 그 무엇을 믿으세요." 




이후 저는 삶에서 많은 변화들을 겪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결정을 내렸고 많은 경우에 평범하지 않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게 맞는 결정인지, 이래도 되는 건지 고민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을 가지세요. 
스스로를 믿으세요.

혼란스러울 때마다 아디야 샨티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날 제 마음에 심어둔 삶에 대한 믿음의 씨앗이 서서히 자랐습니다. 점점 제 깊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삶이 인도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깊은 내면의 소리를 의지처 삼아 새로운 방향으로 삶의 신호를 따라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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