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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Oct 04. 2019

#22. 내 인생의 행운, 팀장님

2019.10.04.

내 인생의 행운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곰곰 생각해보면 꽤나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건강한 부모님 사이에서 건강하게 태어난 것, 나쁘지 않은 머리를 타고난 것, 바닷가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것, 서울에 살게 된 것, 내 분에 넘치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


행운의 범위를 직장 생활로 좁혀도 위에 열거한 예 중 마지막은 목록에 그대로 남아 있다. 어쩌면 그걸 선두에 둬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 이유는 신입사원 때 만난 내 첫 팀장님 덕분이다. 가냘픈 몸매와 다부진 심지, 바다보다 넓은 아량과 더없이 따뜻한 심장을 가진 최준식 부문장님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의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선 입사 전 홈페이지에 확인한 사진부터 운전 중 시비라도 붙은 모양인지 기선 제압용 눈빛을 하고 넥타이를 풀어 헤치는 듯한 느낌이었고, 실제로 봤을 때도 어딘지 까칠해 보였다. 말도 거의 없고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이라, 괜히 무섭기도 했다. 하물며 입사 첫날 첫 팀 회의에서 한 말이 “일은 못해도 된다, 하지만 난 싸가지 없이 구는 건 못 참는다.”였으니···.


꽝 중에 꽝인 줄 알았던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을 대하는 그의 책임감, 팀원들을 위하는 그의 마음씨는 정말 본받고 싶었다. 투덜투덜거리지만 사소한 요청 하나도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어 결정적인 순간에 의지가 되는 캐릭터까지, 그는 여전히 ‘직장인으로서의’ 내 본보기다.


그가 오늘 입사 10주년을 맞이했다. 부문원들이 깜짝파티를 준비했다. 하지만 서프라이즈에는 실패했는데, 늘 나가서 점심을 먹던 그가 하필이면 오늘 처음으로 도시락을 싸와서 사내 카페에 떡하니 혼자 앉아있었던 거다. 파티 준비를 전담하던 후배들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내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안절부절하는 후배들을 보며 또 한 번 느꼈다. 그가 참 훌륭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수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으며 기념사진을 찍고 감사패를 받은 뒤 자리로 돌아와 한 돈짜리 황금 열쇠 박스를 뜯으며 “털보야, 겨우 한 돈이 뭐냐?”하는 그에게 “그러니까요, 겨우 한 돈이 뭐야. 그냥 저 주시죠?”하며 웃어 보였다. 오랜만에 “미친 거야?”라는 그의 시그니처 대사를 들으니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기념할만한 날이고 그에 앞서 금요일인데, 그는 지금도 사무실이다. 내가 담당하는 클라이언트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은 탓이다. 딱히 큰 이슈가 있을 것 같지 않으니 먼저 들어가시라고 했는데도 “됐어.” 한마디뿐이다. 고맙고 든든하다. 아까 파티 때 안아드리고 번쩍 들어 올려 어화둥둥 해드리기는 했는데 내친김에 헹가래까지 쳐드릴 것을, 못내 아쉽다.


축하드립니다. 조만간 맥주타임 신청할 테니, 도망가기 없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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