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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Oct 11. 2019

#24. 비하인드 더 '빽' 패스

2019.10.09.

농구의 여러 플레이 중 가장 해보고 싶은 건 단연 덩크다. 빈스 카터의 윈드밀이나 LBJ의 토마호크 웨이드의 스핀무브에 이은 투 핸드 슬램, 베이스라인을 돌파한 뒤 꽂아 내리는 코비의 리버스 덩크 등은 볼 때마다 나도 몰래 몸을 움찔움찔하게 된다.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아마 평생 경험해보지 못할 것임을 알기에 더욱 큰 동경을 품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덩크는 내게 그야말로 꿈의 영역이니 말이다.


가장 좋아하는 플레이는 따로 있다. 패스가 나아가는 방향으로 시선을 두지 않고 동료의 위치와 움직임을 미리 파악하거나 예측해 등 뒤로 공을 뿌리는 ‘비하인드 더 백 패스’다.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처음으로 농구공을 잡았었는데 그때 NBA 중계와 지난 영상들을 찾아보면서 멤버 사이의 탄탄한 호흡과 유려한 볼 무브먼트를 48분 내내 구사하는 밀레니엄 킹스에 푹 빠지게 됐다. 그들의 전매특허 중 하나가 바로 비하인드 더 백 패스였다.


그래서인지 내게 비하인드 더 백 패스는 뭐랄까, 화려한 기술과 끈끈한 팀워크의 이상적인 결합을 상징하는 무언가가 됐다. 고백하자면 포지션 특성상 슛보다는 주로 패스를 하는 입장이었기에 득점 보다 더 간지나는 어시스트를 하기 위해 무리하다 친구들에게 욕을 먹었던 기억이 나지만···, 아무튼 의미를 부여하자면 그렇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일단 공을 정확히 배달하고 또 그것을 받아 골까지 마무리하려면 기본기가 기반이 되어야 하고, 공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오랜 훈련을 통해 서로의 다음 움직임을 읽어낼 정도의 호흡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조금 다른 형태로 비하인드 더 백 패스를 주고받는다. 상대는 James다. 작업실 ‘각방’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날 우리는 늘 동일한 루트로 귀가를 한다. 먼저 각방에서 녹사평역까지 걸어간다. 그곳에 따릉이가 두 대 남아있으면 거기서부터 따릉이를 타고 아니면 더 걷는다. 용산 전쟁기념관까지 가면 대개는 따릉이에 오를 수 있다.


페달을 밟기 시작하면 항상 내가 앞에 형이 뒤에 위치한다. 우리는 그 상태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서울역까지 달린 뒤, 나는 서대문 방면으로 형은 종로 방면으로 나뉘어 각자의 길을 간다. 이 귀갓길은 어느새 우리의 루틴이 되었다. 최근에는 무려 로얄살루트 21년산을 (한 잔씩) 마시고도 그리했다. 술 갖다 놓은 21g야 고맙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종종 ‘빽’이 있다는 건 이런 든든함이구나, 하는 기분에 들고는 한다. 생각해보면 학창시절 땐 내 빽이 누군데 니 빽은 누구니, 누가 더 빽이 많니 적니 하며 옥신각신하는 걸 자주 봤던 것 같은데, 당시엔 쭈그리고 있던 나도 이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다. 나도 빽 있다고, 이 사실은 명명백빽하다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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