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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Oct 15. 2019

#26. 대단히 굉장한 결혼식

2019.10.13.

대단히 대단하고 굉장히 굉장한, 참으로 그들다운, 더없이 근사한 시간이었다.


쾌청한 일요일 오후 두시, 지하철 3호선에 올랐다. 평소라면 빈자리가 있어도 한동안 열리지 않을 출입문에 기대 책을 읽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겠지만 부러 좌석을 먼저 둘러봤다. 목적지까지 최대한 체력을 아끼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서울메트로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비록 앉을 수는 없었지만 신사역에 다다를 때까지 그리 붐비지 않아 다행이었다.


신사역에서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목적지로 가는 버스가 방금 떠난 모양이었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되겠다 싶어 택시를 불렀다. 도로가 막히지 않아서 다시 한 번 다행이었다. 두시 오십분 경에 차에서 내려 3층으로 향했다. 내 가장 소중한 친구 중 하나, 아니 둘인 능청과 풍문의 결혼식이 열릴 곳으로.


벌써부터 사람이 많았다. 길게 늘어선 줄을 피해 능청과 능청의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능청은 뭐가 그리 좋은지 벌써부터 싱글벙글이었고, 어머님과 아버님도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손님을 맞이하고 계셨다. 능청과 어머님 아버님, 그리고 먼저 온 라이언과 그의 연인 시드니와 악수를 나누고 신부 대기실로 향했다.


신부 대기실에는 풍문이 새하얀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순서를 조금 기다렸다가 풍문 옆에 앉아 그녀와 사진을 찍었다. 계속 웃고 있느라 입 아프겠다 야, 라는 실없는 소리를 건네고는 부랴부랴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러고 보니 대기실 안에 풍문의 친구들이 여럿 모여서 그녀를 케어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변변한 인사도 건네지 못했다. 보통의 날 같았으면 나름 살갑게 말을 붙이며 통성명이라도 했을 텐데, 못내 아쉽다.


내가 결혼을 하는 것도 아닌데 긴장감이 가시지 않고 어딘가 경황이 없었다. 두 친구가 내게 사회를 맡겨 주었기 때문이다. 결혼식 사회가 처음은 아니었는데 좀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집을 나서기 전에 먹은 감기약 탓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정말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커서였을 수도 있겠다.


결혼식이 곧 거행될 예정이라는 안내를 두 번, 이어지는 중창단의 오프닝 공연이 끝나자 조명이 켜졌다. 내 소개를 하고 미리 준비해둔 개식사를 읽어 내려가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들키지 않으려 무릎과 허벅지에 힘을 꽉 주었다. 쥐가 날뻔했다. 어찌어찌 멘트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웨딩의 개막을 알렸다.


약 40분가량 진행된 능청과 풍문의 웨딩, 이른바 ‘용꼉웨딩’은 대단히 대단하고 굉장히 굉장했다. 능청 어머님의 화촉점화를 시작으로 두 주인공의 입장과 맞절, 천년헤롱 만년헤롱을 다짐하는 둘의 혼인 서약, 양가 아버님들의 유쾌하면서도 뭉클한 덕담과 성혼선언문, 마치 한 편의 짤막한 토크콘서트와 같았던 김하나·황선우 작가님의 축사, 용꼉 부부의 사랑의 모양을 시인 유희경 특유의 시어로 그려낸 유희왕의 축시, 살짝 밀려 올라간 바짓단마저 사랑스러웠던 라이언의 축가 그리고 내빈들까지 뱅배래뱅뱅하게 만든 능청의 세레나데, 덩실덩실 마지막 행진까지. 참으로 그들답게 풍성하고, 이보다 더할 수 없이 근사한 시간이었다.


너희들을 생각하면 늘 고맙고 미안하고, 가끔은 밉고 그렇다. 그래도 축하해. 행복하게 잘 살아, 친구들아. 신혼여행 무사히 다녀오고, 돌아오면 또 지지고 볶자. 사랑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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