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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Oct 17. 2019

#27. 완벽한 가족

2019.10.17.

나은이가 왔다. 어릴 적부터 친남매처럼 지낸 한 살 터울 사촌 누나의 딸이자 내 조카, 강나은 1세. 그동안 사진으로만 접했는데 어쩜 그리도 그녀와 쏙 빼닮을 수 있는지 매번 놀랐다. 실제로 보니 더 충격. 몇 주 전에 온느와 사진첩을 뒤적일 때 봤던 사촌 누나의 그때 그 모습 그대로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고 들었는데 나를 보자마자 나은이가 활짝 웃으면서 안겨와 무척 뿌듯했다. 옆에서 사촌 누나가 “나은이가 벌써부터 잘생긴 사람을 알아보는 갑다~”하며 덩달아 흐뭇해했다. 참고로 그녀는 예부터 내가 대단한 미남이라고 ‘진심으로’ 믿는 편이다. 싸이월드가 한창이던 시절 나 몰래 본인의 미니홈피에 내 사진을 퍼가기도 했을 정도로….


친누나의 딸, 아들이자 역시나 내 조카인 예린이와 도준이도 갓난 동생을 보아 신이 났는지 연신 말을 걸고 책을 읽어주고 장난감을 가져다주고 포도를 건네고 난리다. 덕분에 집은 시끌벅적 난장판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셋의 조합을 보니 왠지 삼십 년 전의 나와 누나 그리고 사촌 누나가 저랬겠구나 싶다. 새삼 세월 참, 빠르다.


언젠가 엄마가 이런 말을 했었다. 예린이와 도준이를 보면서 너무나 안심이 된다고. 자신은 아비 없이 자랐고 남편 역시 조실부모한 탓에 나와 누나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정을 온전히 느끼게 해주지 못했는데 손주들은 친가와 외가를 가리지 않고 부모도 조부모도 그리고 삼촌도 다 있는, ‘완벽한 가족’의 품에서 클 수 있어 정말로 다행이라고. 거기다 굳이 ‘가족의 형태는 각기 다른 것일 뿐 우열을 가리는 게 아니’라고 덧대지는 않았다. 어떤 마음인지 대강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따금 이런 상념에 빠지곤 한다. 나는 내 조카들을 사랑하는 걸까? 솔직히 퇴근 후 지친 심신으로 귀가하면서 속으로 ‘제발 집에 아무도 없었으면, 조카들이 자기들 집에 가 있거나 곤히 잠들어 있었으면’하고 생각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조카들이 놀자고 보채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도망치기도 여러 차례, 부러 집에 늦게 들어간 적도 허다하다. 참고로 예린이와 도준이의 육아는 내 부모님이 거의 전담하시고 누나네 가족은 우리집 바로 앞 동에 산다.


답을 찾았는가, 하면 속 시원히 그렇다고 답을 못하겠다. 분명 사랑하는 것 같기는 한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가도 문득 문득 보고싶고 생각나고 그런다. 그래도 조카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크는 만큼 나도 아주 조금씩은 크고 있구나를 깨닫는다. 아울러 ‘완벽한 가족’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엄마가 왜 울듯말듯 흐뭇한 표정을 지었는지, 그 얼굴의 의미에 점점 가닿는다.


한때 가까웠던 이에게 이런 말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사춘기 무렵부터, 우리 가족이 별문제 없이  화목해서 오히려 나는 그게 더 싫고 불편했다.”라고. 그 말을 들은 그때 그 친구도 울 듯 말 듯한 표정이었다. 한심하다는 듯 원망스럽다는 듯 매서운 눈초리가 당시에는 서운했는데, 상기하니 그 순간의 그녀에게 괜히 미안함이 샘솟는다. 누군가의 복에 겨운 소리가 누군가에겐 가슴을 찢는 굉음이 될 수 있음을 그땐 왜 몰랐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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