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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Oct 21. 2019

#29. 턱걸이 성공을 축하해

2019.10.21.

체대에 갓 입학한 새내기 남학생의 소개팅 썰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말주변이 없었던 그는 마음에 쏙 드는 이성과 마주한 자리에서 특기가 뭐냐는 그녀의 물음에 주뼛거리다 “저 턱걸이 잘해요!”라고 자신의 매력을 어필했다는 이야기다. 순박한 청년의 참 귀여운 에피소드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그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턱걸이는 뭐랄까, 매력과 마력이 넘치는 운동이니까 말이다.


턱걸이가 하루의 주요한 루틴이 된 지 반 년쯤 된 것 같다. 계기는 단순했다. 지난 1월 회사가 을지로에서 서울역으로 이사를 했고 새롭게 입주하게 된 건물이 힐튼호텔로 이어지는 정원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정원에는 아주 낡은 평행봉과 철봉이 있다. 학창 시절이나 대학생 때는 단 하나도 못했었기에 그냥 지나치기를 몇 개월, 어느 날 별 뜻 없이 시도해봤더니 3개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턱걸이 라이프가 여태 이어져오고 있다.


처음엔 개수에 집착했다. 자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팔만 깨작깨작 숫자를 경신하기에 급급했다. 얼마나 많은 권의 책을 읽느냐에 집착하며 속독 학원 조교라도 된 듯 책장을 넘기던 군인 때의 내 모습처럼. 그래서 왕자와 선라이즈 등의 형들에게 쿠사리도 제법 먹었다. 팔을 더 쭉쭉 펴라는 둥, 깨작대지 말라는 둥.


깔짝깔짝하면서도 점차 한계치를 늘리는 과정에 재미를 붙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힘이 붙은 모양이다. 삼 개월 전부터는 교본에 나오는 정자세로 턱을 걸었다 내렸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오늘 기준으로 약 9.5개 정도를 할 수 있다. 기억에 남든 남지 않든 책을 붙들고 있는 습관을 길러 준 군 복무 이년과 마찬가지 효과가 아니었나 싶다.


몸의 형태도 제법 변했다. 전체적으로 근육이 발달했고 특히 활배근이 두터워졌다. 몸무게에는 큰 변동이 없는데 살이 빠졌다거나 얼굴이 핼쑥해졌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기도 했다. 자세 교정에도 도움이 되는듯하다. 긴장의 끈을 놓을라치면 구부정해지던 등과 어깨가 항시 꼿꼿한 느낌이라 일상적인 피로가 덜하다.


무엇보다 좋은 건 턱걸이를 핑계 삼아 틈틈이 바깥바람을 쏘이며 리프레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날씨에 개의치 않고 삼삼오오 옥상으로 향하던 흡연자들이 이런 기분이었겠지, 하며 턱걸이를 하러 갈 땐 담배를 피우는 후배 중 한 명은 꼭 대동한다. 왠지 혼자 하기는 민망하다. 귀찮았지 얘들아, 미안해.


이변이 없는 한 턱걸이는 지속할 요량이다. 거른 날에 도리어 몸이 더 뻐근한 지경이 되어버렸으니, 하지 않고는 못 배기지. 겨울이 다가오는 게 자못 두렵기는 하지만 화이트워커가 쳐들어오는 것도 아니니 뭐, 방법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신기한 우연이다. 잠시 짬이 나서 사무실에서 이 일기를 쓰고 있었는데, 내가 사내 멘토로 지정되어 친분을 쌓은 멘티 인턴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대리님, 턱걸이로 통과했다고 합니다^^” 정규직 전환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다.


앞으로 올라야 할 철봉은 더 높아지고 들어 올려야 할 무게는 더 무거워지겠지만, 어쨌거나 첫 턱걸이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리고 너는 이제 내 턱걸이 파트너로 낙점이다. 거부권은 없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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