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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Nov 11. 2019

#38. 복잡하게 나쁜 사람

2019.11.08.

사진을 찍은 날에는 늘 그중에서 그럴듯해 보이는 몇 장을 골라 팟캐스트 영화식당 ‘써드파티’ 팀 단톡방에 올린다. 그곳엔 내 사진 스승님인 James와  그 역시 훌륭한 사진가인 관석이 있다. 당연히 형들이 별로여도 좋은 말을 해주겠거니 기대하면서 약간은 응석이 섞인 심산으로 공유하는 것인데, 지금까지는 늘 칭찬을 해주었다. 내가 <슬램덩크>의 황태산과 같은 캐릭터라는 것을 아는 눈치다.

지난 목요일에도 비슷했다. 내가 사진을 보내고 형들이 확인하고 좋다고 말해주는 뭐 그런. 관석은 곱씹게 되는 말을 남겨주었다. “같은 장소, 다양한 시도”라고 결과물이 아니라 내 행위 자체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을 해준 것이다. 이전까지는 막연하게 사진 찍는 일이 재미있다고만 느꼈는데, 형의 코멘트 덕분에 내가 그리 느꼈던 이유가 조금은 뚜렷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동일한 공간, 동일한 사물 등 하나의 무언가를 요모조모 뜯어보는 건 흥미롭다. 요렇게도 찍어보고 조렇게도 찍어보고 어둡게도 찍어보고 밝게도 찍어보고 하다 보면, 그 흔한 맨홀 뚜껑이 살아생전 처음 맞닥뜨리는 괴생명체 마냥 낯설었다가 매우 근사한 조형물처럼 보였다가, 그 인상이 이리저리 널을 뛴다. 빛이 얼마나 어떻게 비쳤느냐에 따라서도 분위기가 천양지차다. 세상은 참 여러 얼굴을 갖고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상대의 신체나 감정의 상태에 따라, 혹은 상대가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이와 마주하고 있느냐에 따라 마치 변검과 같이 그 얼굴의 모양과 톤이 달라질 것이다. 물론 애정을 갖고 들여다볼 때에만 그 차이가 인식되고 기억되겠지만. 이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프레임을 조정하는 것과는 비교하기 힘든 수고를 필요로 하는 과업이기도 할 테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글 중에서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다.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중략) 롤리타라는 소설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지만, 그 말은 한 인간을 이해하는 말이 아니라 오해하는 말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사내를 이해하는 길은 오로지 그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방법밖에 없다. 제대로 읽기만 한다면 우리는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말을 집어던질 수 있게 될 것이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새삼 되새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깨닫게 될 것이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니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드는 건, 괜한 심통이겠지. 나쁜 보다는 복잡에 방점을 두고, 복잡다단한 면면을 부지런히 탐구해보아야겠다. 공간이든 사물이든 사람이든. 그것도 결국 내 ‘필터’를 거쳐 내 멋대로 받아들이는  피상에 불과하겠지만, 별 수 있나.

그러고 보니 저 책은 (존폐 위기에 처한) BBTS의 일원이자 연희동 최고의 명소 ‘마세’의 주인장인 대현에게 가 있다. 지난달 온느와 함께 방문했을 때 빌려주었다. 그래, 나는 준 게 아니고 ‘빌려’ 준 거다. 하지만 돌려받지는 않을 요량이다. 평생 소장하고 두고두고 들여다볼 가치가 있는 책이니, 그가 꼭 한 번 들추어나 보기를 희망할 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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