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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Nov 14. 2019

#39. 제안서 회의에서 내 역할은

2019.11.13.

최근 간만에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고 있다. 신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어 동료들과 제안서 회의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플랫폼에 기반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의 브랜딩 및 PR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과제다. 덕분에 전혀 문외한이었던 블록체인, 가상화폐, 핀테크와 같은 소위 4차 산업혁명의 구성 요소들에 대한 이해가 조금쯤은 깊어지고 있다.

홍보대행사를 다녀서 드물게 좋은 점 중에서 내게는 이게 일 순위다. 특정 산업군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 그 과정에서 습자지보다 얇지만 어쨌거나 지식은 쌓인다는 것. 특히나 특정 필드에서만 통용되는 개념이나 어휘, 그곳에서 벌어진 상징적인 사건들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렇게 야금야금 주워들은 것들이 실생활에서나 방송을 할 때 또는 글을 쓸 때 요긴하게 쓰인다. 이를테면 회심의 유머에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후배에게 “리액션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도록 해.”라고 경고를 한다던가. 후, 처량하다.

이번에도 재미있는 것들을 여럿 접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떠오르는데, 블록체인을 공부하며 알게 된 ‘51% 어택’ 그리고 플랜을 구성하며 눈에 띈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이다. 아마 이 두 가지는 향후 내가 만들 방송이나 글에서 어떤 식으로든 활용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그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한다. 지난주엔 팟캐스트 영화식당에서 <조커>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녹음 당시 내가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을 알았더라면 그걸 차용해 영화를 표현했을 것이다. 아쉽다.

야근은 끔찍하게 싫지만, 제안서 회의 자체는 그럭저럭 즐기는 편이다. 논의를 이어가다 보면 동료들 각자의 장점이 발현되는데 그걸 지켜보는 일도 흥미롭다. 큰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구체적인 실행안에 강한 사람, 산발적으로 흩어진 아이디어의 조립에 능한 사람 등등, 저마다 특화된 영역들이 있다. 나는, 음, 모두가 지치지 않도록 헛소리와 개그를 담당하고 있달까. 나때문에 피로가 가중되는 건 아닌지 불현듯 걱정이 뇌리를 스치지만, 애써 무시하기로 하자.

한편으로는 전에 없던 부담감이 생기기도 했다. 이직이 잦고 기본적으로 연령대가 어린 조직이라서인지 나도 어느새 선배보다는 후배가 훨 많은 위치가 되었고, 내년 4월이면 벌써 과장님 소리를 듣게 생겼다. 그만큼 회사가 부여하는 역할과 책임의 무게가 커지게 마련이니, 받아들일밖에. 함께하는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잘하고, 더 성실하게 업무에 임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이번 프로젝트는 결실이 있었으면 한다. 전혀 새로운 영역이기도 하거니와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고 하니, 정말일까 의구심이 들긴 한다만 다시 한번 애써 무시하고, 다른 분야의 일보다는 낫지 싶다. 혹시 아는가, 여기서 짬밥 좀 먹다 보면 존경하는 내 동생 헌재가 괜찮은 조건으로 나를 본인 회사에 스카우트해갈지. 인생 계단 안 올라가 보면 모르는 거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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