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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Nov 15. 2019

#40. 하느님, 가챠?

2019.11.14.

최근 누나가 예린이가 다닐 유치원을 알아보느라 동분서주하는 모양이다. 여태껏 대충 열 군데에 가까이 견학을 다녀왔다고 한다. 연차를 야금야금 까먹고 있노라고 가벼운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린이는 어린이집에 일 년 더 머물러야 할 가능성이 훨씬 높단다. 제삼자의 입장이지만 옆에서 지켜보니 ‘유치원 보내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 말이 약간은 실감이 난다.

한참 얘기를 듣다가 엄마에게 “내가 어릴 때도 이렇게 유치원 보내기가 힘들었느냐.”라고 물었다. 그녀는 약간 나았던 것 같은데 가물가물하다는 답변과 함께 한 마디를 무심코 꺼내놓았다. 그리고 나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다.

유치원을 한차례 옮긴 적이 있다. 이사를 했다거나 집안에 사정이 생겨서 그리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냥 다니는 유치원만 옮겼다. 전학이 결정되던 순간이 아직 생생하다. 하원 후에 할머니와 TV를 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희미하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한참을 듣던 할머니는 “애가 다른 데 가려고 하겠냐.”시며 옥신각신했다. 대번에 ‘다른 유치원에 갈 수 있구나!’ 눈치를 챈 나는 “나 갈래!”하며 할머니의 팔에 매달렸고, 다음 날 아침 나는 낯선 스쿨버스에 앉아 있었다.

이유가 있다. 그날 유치원에서 바지에 오줌을 쌌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는 국을 쏟은 것뿐이라고 구라를 쳤지만, 고사리손으로 시전한 밑장빼기로 선생님의 귀마저 속이기는 어려웠다. 부끄러움에 휩싸인 나는 절망을 그림자 삼아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었다. 도대체가 동네 창피해서 이제 선생님 얼굴을 어떻게 보나, 한탄하면서. 그러니 엄마로부터의 그 전화 한 통이 구원이 아니고 무엇이랴. 퇴근한 엄마는 “새로 가게 될 유치원이 아주 훌륭한 곳이다.”라며 나를 안심시키려 애썼는데 그럴 필요는 만무했다.

오줌싸개의 탈주라는 측면 외에도 이는 내게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엄마는 내가 장성하도록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비롯 치맛바람은커녕 콧방귀도 뀌어본 일이 없다. 따라서 유치원 전학은 그런 엄마의 내 학업에 대한 유일한 ‘참견’으로 남아있었던 거다.

진실은 조금 달랐다. 엄마가 새 유치원을 알아본 건 자녀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래 유치원에서 나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탓이다. T.O가 없는데 할머니가 막무가내로 돌입해 등록을 시켰다나 뭐라나. 손자를 위해 여포가 된 할머니의 애끓는 조모정···, 이라고 포장하진 말아야지. 여하튼 난 새 둥지에서 무사히 졸업하고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었다.

천주교에서 운영하던 곳이었던지라 나름 세례도 받고 당시엔 제법 신실했다. 하느님의 기적을 여러 번 경험하기도 했다. 한창 스트리트 파이터에 빠져있던 나는 동전을 넣고 피규어를 뽑는 소위 ‘가챠’에 용돈을 투자하고 있었다. 레버를 돌리기 전에 성호를 긋고 원하는 캐릭터를 손으로 가리키는 의식을 늘상 치렀는데, 내 기억에 따르면 난 언제나 하느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다.

물론 사실이 아닐 테다. 하지만 성공보다 실패를 보다 강렬하게 받아들이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면, 성공 사례로 점철된 내 짧은 신앙생활은 꽤나 축복받지 않았는가 생각하기로 하자. 또 모르지, 그게 진짜일지도. 그렇다면 하느님,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는 알아서 잘 살아갈게요. 혹 여력이 있으시다면 예린이가 원하는 유치원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것도 가챠의 일종이니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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