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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Nov 25. 2019

#45. 영화식당의 때이른 송년회

2019.11.23.

2012년 막바지에 대학생 넷이서 시작한 팟캐스트 영화식당. 현재는 열두 명의 직장인들이 운영하고 있다. 다들 생업이 바쁘고 또 가정을 꾸린 이들이 대다수라 한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다. 여태 서로 일면식도 없는 멤버들도 있고 기껏해야 한두 마디 나누어본 게 다인 사이도 있다. 나 역시 그렇다.

지금의 상태가 아쉽거나 하지 않고 나름의 방식들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이 뿌듯하다. 부러 모두가 어깨동무하며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헐겁고 느슨한 유대가 더 맞는 곳이 있고, 영화식당은 그런 루즈핏이 어울린다.

어쩌다 시작된 것인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이런 영화식당이 이례적으로 모임을 계획하게 됐다. 최근에 새로 합류해 팀을 꾸린 멤버도 있겠다 연말도 다가오겠다, 게다가 작업실도 있으니 한번 뭉치자는 말이 단톡방에서 나왔다. 결과는 반타작. 북적북적을 대비할 뻔했으나 여섯 명만 옹기종기 둘러 앉았다. 그래도 충분히 시끌벅적했다.

은주와 데미안이 사 온 피데, 케밥으로 요기를 하다 불닭과 닭발, 닭껍질 튀김이 와서 그걸 또 한참 먹다가, 중간에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파할 즈음엔 페퍼로니 피자 한 판을 시켜서 나눠 먹었다. 맥주, 위스키, 진, 럼, 보드카 등 여러 종류의 술을 섞어 마셨고 할 말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끊임없이 조잘거렸다. 수다쟁이들이 모이면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다.

원래는 ‘합동 공개방송’ 등 거국적인 안건도 있었는데 소소한 잡담을 나누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는지 공개방송의 공자도 꺼내지 못하고 해당 사안은 공으로 돌아갔다. 아님 논의를 했는데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첫 방송이 업로드된 지 만 7년이 다 되어갈 정도로 오래되어서였는지, 삶에 안정감이라고는 없었던 이십 대 중반에 만난 사람들이라서였는지, 대화의 주제나 모임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게 실감 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실 막 무겁거나 어렵거나 생활감 충만한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지는 않았는데 괜히 그랬단 느낌이다. 아마 그만큼 내가, 우리가 변했기 때문이겠다.

간만에 요즘 우리 방송을 누가 얼마나 듣나 확인해보니, 여전히 적잖은 이들이 영화식당을 챙겨 듣고 있다. 몇 천 명에 달하는 이 사람들은 대체 누굴까, 어디서 뭘 하며 사는 사람들일까, 그리고 하고많은 팟캐스트 중에 대체 왜 영화식당을 들을까. 궁금? 솔직히 별로 안 궁금.

중요한 건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삶을 이어가면서 생활의 일부로 이걸 위한 공간을 남겨두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만드는 우리도, 듣는 그들도. 그게 대체 언제까지가 될 것인가, 이건 진짜 좀 궁금하다. 한 번 알아보도록 하자. 직접.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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