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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Nov 27. 2019

#47. 이대로 삼대로

2019.11.26.

2005년 1월, 누나의 이대 입학이 결정되고 그녀가 서울로 떠나기 전 일가친지들이 모인 식사 자리가 있었다. 엄마는 “딸이랑 공통점이 하나 생겼네.”하며 뿌듯해했는데, 그걸 듣던 아부지는 “졸업도 못했으면서 무슨.”하며 핀잔을 줬다. 엄마는 “졸업했으면 이런 집안에 죽었다 깨어나도 시집 안 왔겠지.” 응수했고, 머쓱해하는 아부지의 표정과 주위 사람들의 웃음 소리가 기억 난다.

엄마는 1976년 또는 1977년에 이대생이 되었다. 영문과였다고 들었는데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 탓에 1년 만에 다시 부산으로 내려와야 했다. 계절이 한 바퀴 돌 동안 캠퍼스의 낭만은 만끽했을까? 공부하랴 알바하랴 정신이 하나도 없던 시절이었다던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이후에도 학업을 이어가지는 못했고 밥벌이를 위해 바로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다. 김해공항과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를 오가며 2007년 겨울까지 일하다 사무관으로 명예퇴직했다. 입학과 상경, 자퇴와 낙향 사이. 별처럼 무수할 그녀의 감정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1977년 또는 1978년 이후의 삶에 있어서도 역시 그렇다.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을 인터뷰할 때,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어냐는 질문에 ‘배우지 못한 것’이라 답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건 익숙한 모습이다. 글을 읽고 쓰는 것조차 익히지 못한 이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엄마에게도 분명 해소되지 않은 아쉬움이 응어리져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만큼은 아니’라 내가 말할 수도 없겠다. 누군가의 감정은 상대평가의 대상이 아니니까, 감정을 감정할 자격은 오직 스스로에게만 주어질 테니까.

귀가하는 나를 보고 엄마가 “예린이 이대부속유치원 걸렸단다.”라며 기뻐했다. 이주 전 내 일기에 썼던 기도빨이 먹혔는지 가장 원하던, 물론 예린이가 원했다기보다는 누나와 매형이 바라던 바였겠지만, 유치원에 당첨된 것이다. 이렇게 삼대가 이화라는 이름 아래 교육을 받게 되다니, 신기하다면 신기한 일이다. 내친김에 내년, 내후년에는 도준이까지 그곳으로 통학한다면 참 좋겠다.

앞으로 몇 년 간 엄마는 낯설지만 정겨운 그 공간을 자주 방문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손녀의 손을 잡고 추억 속 캠퍼스를 거니는 그녀의 마음은 어떤 모양일까. 부디 있는 힘껏 동그랗고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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